기업 사고에 법 처벌 잣대 들이대
10여 차례 호소·경고 결국 공염불
정부·정치권 법안 심사숙고 의문
정부와 정치권이 결국 선을 넘었다. 경제계의 애끓는 호소에도 불구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이라는 입법폭력을 현실화시켰다. 현 정부 들어 입법된 기업 규제법안 가운데 단연 으뜸이다. 기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사고에 고의성의 유무와 상관 없이 형사처벌의 잣대를 들이대는 유례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됐다.
지난해 11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법안’을 발의하자마자 중소기업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중소기업중앙회 등 10여개 중소기업 관련단체들은 법안이 국회 법사위를 거치는 동안 10여 차례에 걸쳐 법안의 문제점과 후폭풍을 경고하고 또 독소조항을 빼줄 것을 호소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이 여야 원내대표를 만나고, 법사위원장을 만나 중소기업들의 절박함을 전달했지만 소용 없었다. 이후 정부안과 여야의 합의를 거쳐 처벌수위가 소폭 조정되고, 기업 규모별 시행유예를 두는 등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조항이 마련됐지만 징벌적 처벌이라는 근본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만으로도 사업주의 사고책임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업 대표에 대한 징역형, 법인 벌금, 작업·영업중지 등 행정재제, 징벌적 손해배상 등 4중 처벌을 명시한 과잉입법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토록 간절한 호소에도 철저히 귀를 막은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사업을 접겠다”는 게 중소기업인들의 항변이다.
기업들 특히, 중소기업들의 불안감은 극도로 높다. 중대재해법 시행을 걱정하는 중소기업들의 한숨은 결코 엄살이 아니다. 사고가 날까 두려워 사업을 포기하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가혹한 법이기 때문이다.
창업자, 오너가 경영을 맡고 있는 중소기업이 99%에 달하는 상황에서 대표이사가 법적 처벌로 공석이 되면 회사는 말 그대로 ‘올스톱’ 된다. 지난 2019년 300인 이하 중소기업의 사고재해 건수는 8만8583건. 전체 산업재해사고 9만4047건 중 94%를 차지했다. 처벌받게 될 절대다수가 중소기업인 셈이다.
중대재해법이 정한 벌금과 손해배상액은 회사의 존립마저 가를 정도다. 중기중앙회가 조사한 2019년 기준 중소제조업체 평균 자산은 46억2000만원, 연평균 매출액은 42억8000만원. 중대재해법이 정한 법인 처벌 수위인 사망 시 ‘50억원 이하’에도 못 미친다. 얘기치 못한 사고로 인해 기업이 망할 수 있다는 경고가 빈말이 아닌 이유다.
중대재해법을 막지 못한 중소기업계는 이제 보완입법 마련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본격적인 법 시행까지 시간이 남아있는 이상,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태세다. 중기중앙회 등 중소기업 유관단체들의 발걸음은 벌써부터 바빠지고 있다.
입법재량권이 아무리 광범위하다 해도 입법 땐 법익의 균형성을 따져보는 게 기본이다. 기업이 망하고 문 닫는 기업이 속출하면 공익도 사익도 구분 없이 망가질 우려가 높다. 국내 전체 기업의 99%, 종사자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에 직격탄이 될 중대재해법 제정 때 정부와 정치권이 얼마나 고민하고 심사숙고했는지 의문이다. 인도 건국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는 ‘부당한 법률은 그 자체가 일종의 폭력’이라고 말했다. 중대재해법을 ‘입법폭력’이라 불러도 무방한 이유다.
유재훈 기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추진 일지〉
*2020.11.12 박주민 민주당 의원 대표발의
*11.17 이낙연 민주당 대표, 관훈클럽 토론에서 입법 추진 약속
*12.22 대한상의, 중기중앙회 등 경제 8단체 입법 중단 기자회견
*2021.1.4 김기문 중기중앙회장, 여야 원내대표에 입법 중단 의사 전달
*1.7 여야 합의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소위 통과
*1.8 국회 본회의 법안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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