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수수료·전산비용 ‘핑계’

퇴직연금 ETF 편입 ‘밍기적’

실망한 고객들 이탈 잇따라

공모펀드 위축 속 ETF 인기 ‘제살깎기’

시중은행 “시스템 구축 검토 중”

[헤럴드경제=서정은 기자]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한 투자 수요가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 은행을 통해 퇴직연금을 거래하는 고객들에겐 먼나라 이야기다. 은행들도 장기상품인 퇴직연금 특성상 거래가 쉬운 ETF를 편입하는게 옳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ETF를 도입하면 펀드 판매보수를 포기해야하는 데다, 전산시스템도 구축해야 해 편입을 주저하고 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 중 퇴직연금에 ETF 거래 시스템을 구축한 곳은 한 곳도 없다. 증권사들이 일찌감치 주식매매 시스템을 활용해 연금계좌에도 ETF 거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농협은행, 국민은행 등은 최근에서야 시스템 개설을 검토하는 분위기다.

시중은행 퇴직연금 실무진들은 “ETF는 테마형 상품이 많고, 거래가 쉬워 중장기 투자를 해야하는 퇴직연금 취지와 어긋날 수 있다”며 “펀드를 통해서도 다양한 투자가 가능한데다, ETF 고객 수요도 많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ETF는 시장형상품도 많고 거래비용도 적다. 중장기 투자가 반드시 한 곳에 돈을 오래 넣어두는 전략인 것도 아니다. 중장기 투자란 오랜기간에 걸쳐 꾸준하게 관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오히려 은행들이 ETF를 편입하지 않으면 이익이다. 은행에 펀드는 판매보수를 가져다주는 쏠쏠한 수익원이다. 최근 펀드 시장이 위축돼 수익성 악화와 씨름하는 가운데 보수가 거의 없는 ETF 거래를 허용하면 그동안의 수익을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고객들 스스로가 펀드 대비 ETF의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ETF에 투자하기 위해 퇴직연금 계좌를 증권사로 옮기는 고객도 상당수다. 은행의 ‘수익집착’에 실망한 고객들의 ‘이탈’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은행들은 주식매매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전산비용도 부담 요인으로 꼽는다. 하지만 퇴직연금 시장의 중요성과, 국내 시중은행들의 규모를 감안할 때 수 십억원 정도의 비용은 충분히 감당이 가능한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올해부터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개별주식 편입이 가능해져 어차피 시스템 구축은 피할 수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는 제 발등 찍기를 고민하는 듯 하지만 최근 ETF 거래를 위해 은행을 떠나는 연금고객들이 늘어나는 만큼 전향적인 태도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