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중요한 자료다, 외부에 유출하면 안 된다”
조국 전 장관 “집사람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실행한 김경록은 처벌…정경심은 증거인멸 무죄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지시를 받고 검찰 압수수색 직전 학교 컴퓨터를 반출하는 등 증거를 은닉한 혐의로 기소된 자산관리인이 항소심에서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정 교수의 1심 판결문을 보면, 정 교수는 물론 조국 전 법무부장관까지 압수수색에 대비한 정황이 상세히 드러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8부(부장 김예영)는 5일 증거은닉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장관 자산관리인 김경록 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자택 불러내 “압수수색 대비해야 한다”… 컴퓨터 저장매체 교체 지시
투자증권사에서 일명 ‘프라이빗 뱅커(PB)’로 일해오던 김씨는 2014년부터 정경심 교수의 주식과 금융상품을 개별 관리했다. 정 교수는 2019년 8월 28일 오후 6시께 김 씨를 서울 방배동 자택으로 불렀다. 김씨를 서재로 데리고 간 정 교수는 컴퓨터 두 대를 보여줬다.
“검찰에 배신당했다. 압수수색에 대비해야 한다.”
정 교수는 이 말을 남긴 뒤 하드디스크 교체를 지시했고, 김씨는 한시간 뒤 서초동 전자상가를 들러 교체할 하드디스크와 SSD메모리를 구입했다. 김씨가 SSD를 새것으로 교체하자 정 교수는 “매우 중요한 자료들이어서 외부에 유출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기도 했다.
김씨는 컴퓨터 SSD를 교체하던 중 현관으로 들어오던 조국 전 장관을 마주치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은 김씨에게 “집사람 도와줘서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악수를 한 뒤 침실로 들어갔다. 저장매체를 교체한 컴퓨터 두 대 중 하나는 조 전 장관이 사용하던 것이었다.
김경록 PB 검찰 진술과 법정 증언
““정 교수 자택 서재에서 흰색 PC에 장착된 하드디스크를 분리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정 교수가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했다. 정 교수는 ‘컴퓨터를 분리하고 있다’고 이야기했고, 마치 하드디스크 교체작업을 중계하는 듯 전화통화를 했다.”
“통화 상대방도 하드디스크 교체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던 분위기였고, 정 교수와 하드디스크 교체에 대해 자연스럽게 말을 주고받았다.”
재판부는 이 전화통화 상대방이 조국 전 장관이라고 결론냈다. 이 시간대에 정 교수가 통화한 사람은 세 명이었는데, 동양대 부총장과 변호인인 이인걸 변호사, 남편인 조국 전 장관이었다. 동양대 부총장과는 집안 하드디스크 교체를 논의할 이유가 없고, 이인걸 변호사는 나중에 하드디스크 반출 사실을 알고 정 교수에게 “그렇게 떳떳하시면 왜 자택 PC를 교체하시느냐”고 질책한 사람이었다.
정 교수는 추후 법정에서 “자료를 자택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펴보기 위해 저장매체를 김경록에게 건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압수수색에 대비해 증거를 은닉한 것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기자들이 정 교수 자택 입구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서재 안에서 PC에 저장된 자료를 살펴보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지적했다.
“누가 나 보진 않았겠지?”…‘고객 호출’에 경북 영주까지 내려간 자산관리인
3일 뒤 김씨는 또다시 정 교수의 호출을 받았다. “오늘 동양대에 내려가야 하는데, 함께 내려갈 수 있느냐”는 연락이었다. 동양대는 경북 영주에 소재한 학교다. 김씨는 당일 선약이 있었지만, 거절하지 못하고 저녁 8시께 정 교수의 집을 찾았다. 정 교수가 미리 챙기라고 한 하드디스크도 가져갔다.
밤늦게 경북 영주로 향하면서 김씨는 운전을 했고, 정 교수는 수차례 조국 전 장관과 통화했다.
“김 대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영주에 가고 있다. 영주에서 하룻밤 자고 부산으로 갈 것이다.”
통화내용을 들은 김씨의 검찰 진술이다.
“당시 옆에서 듣기로는 통화내용 자체가 정 교수가 동양대에 내려가는 이유에 대해서는 조국 교수님이 이미 아는 것 같고, 누구와 어떻게 내려가는지에 대해서만 추가로 궁금해 하는 뉘앙스였다.”
자정이 거의 다 된 시간에 동양대에 도착한 김씨는 정 교수 사무실로 향했다. 김씨는 미리 준비한 하드디스크를 가지고 사무실로 들어갔지만, 정 교수는 PC를 켜고 자료를 살펴보다가 “PC 본체를 통째로 용산전자상가에 가지고 가서 저장매체를 SSD로 바꾸라”고 지시했다. 정 교수는 이 과정에서 김씨에게 “누가 나 보진 않았겠지?”라며 노출을 꺼리는 듯한 말도 건넸다.
결국 김씨는 정 교수가 시키는 대로 PC 본체를 승용차에 싣고 서울로 돌아왔다. 김씨는 검찰 압수수색이 끝난 뒤인 2019년 9월 3일 정 교수로부터 ‘PC를 가져오라’’는 연락을 받고 서울 잠원동에서 만나 PC본체를 건네줬다. 정 교수가 자택에서 빼낸 저장매체 3개는 김씨가 보관하고 있다가 나중에 검찰에 임의제출했다.
시킨 일 한 ‘乙’은 징역형… ‘甲’ 정경심은 무죄
김씨는 결국 1,2심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김씨는 정경심 교수의 사모펀드 투자와 관련해 도움을 주고 있었고, 정 교수로부터 압수수색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을 듣기도 해서 컴퓨터가 중요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김씨는 사건 실체 발견을 곤란하게 해 사법을 저해했다”면서도 “주요 고객인 정 교수의 자산관리인으로, 여러 해 인연을 맺어 사회적 지위를 따졌을 때 열세에도 있어 정 교수의 요청에 의해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김씨를 끌어들인 정 교수는 1심에서 증거인멸 혐의 무죄를 받았다. 검찰은 정 교수가 증거인멸을 지시한 교사범이라고 주장했다. 형법상 범행 당사자가 직접 증거를 인멸하는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 다만 타인을 시켜 증거를 인멸하도록 한 교사행위는 처벌대상이다. 재판부는 정 교수가 단순 지시자가 아니라, 함께 범행을 실행한 공범이라고 봤다. 정 교수가 직접 김씨와 함께 경북 영주까지 내려갔고, 자신의 출입증으로 문을 열고 PC 저장매체를 교체하려던 김씨에게 본체를 반출하도록 한 점을 고려하면 정씨는 ‘지시자’가 아닌 ‘공동실행범’으로 봐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앤트로픽 IPO는 시작일 뿐…AI 모델 ‘골라주는 시장’ 커진다 [서학개미 주식회사]](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3/rcv.YNA.20260813.PRU20260813276001009_T1.jpg?type=h&h=240)
![“교과서 미래엔 AI가 있다”…‘AI 공장’된 미래엔 세종공장 [그 회사 어때?]](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2/news-p.v1.20260821.9213ff47283443e4aeec745e2b971c31_T1.jpg?type=h&h=240)
![일본서 사라진 인플레 ‘명목 앵커’…물가·엔화에 중요한 이유 [츠토무 와타나베]](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1/news-p.v1.20260816.209013b3297d4c92ab32710d529f3877_T1.jpg?type=h&h=2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