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경쟁 환경(level playing field).’ 직역하면 ‘평평한 운동장’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나라마다 공통된 규범이나 표준을 적용해 각국 기업들이 공평하게 경쟁토록 하자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주요한 정책목표로, 브렉시트 전환기간에 이뤄진 영국과의 미래 관계 협상, 중국과의 포괄적 투자협정(CAI)뿐 아니라 그린딜과 같은 중장기 성장 전략에도 자주 언급되는 핵심 가치다. ‘공정경쟁’이라는 EU의 정책구호 뒤에는 국제영향력 회복과 경제적 재도약을 향한 집행위의 복심이 담겨 있다. 현재 EU는 유로존 위기와 난민 문제를 거쳐 브렉시트가 야기한 EU 공동체 축소라는 정치적 불확실성을 직면하고 있다.
특히 유럽은 자국 기업이 환경·인권 분야에 강도 높은 규제를 받는 반면, 느슨한 규제하에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외국 기업이 역내에서 경쟁적 이점을 누리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집행위는 지난해 취약해진 역내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인 투자 사전심사제도를 시행한 데 이어 올해 안에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은 외국 기업을 규제하는 별도 법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올해 2분기 중 법안 채택을 앞둔 ‘탄소국경조정제(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는 탄소배출량 감소를 위해 역내 산업계가 부담하게 된 비용을 수입상품에 부과하는 데 그 목적을 둔다. EU의 환경 규제로 인한 역내외 기업 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수입상품에 한해 관세를 부과하는 ‘탄소관세’, 역내외 상품에 동일하게 세금을 부과하는 ‘탄소세’, 기존 EU 탄소배출권거래제(ETS)의 확대 시행 등이 구체적인 과세 방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난해 진행된 공공의견수렴 결과, 응답자들이 과세 방안으로 ‘탄소관세’를 가장 선호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설문 결과일 뿐, 관련 전문가들은 ETS 확대 시행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그러나 전체 응답자 609곳 중 역내 이해관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83%인 점을 고려하면 유럽 산업계가 체감하는 경쟁 환경의 불공정성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이미 후보 시절 미국식 탄소국경세 도입을 공약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날부터 파리기후협약 복귀를 선언했다. 앞서 집행위는 바이든 대통령 당선 후 ‘세계 변화를 위한 새로운 범대서양 의제’를 발표하며 미국 신행정부에 기후 변화에 대한 협력을 제안한 바 있다.
미국의 공조에 힘입어 EU는 경쟁 왜곡이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균형을 찾아나갈 전망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동참으로 유럽 차원의 논의에 그칠 뻔했던 정책이 전 세계를 아우르는 통상질서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EU는 공정경쟁을 향한 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집행위는 향후 EU 통상 정책의 기반이 될 신통상 전략을 1분기 중 발표 예정으로, 공정경쟁 환경은 6대 주요 분야로 포함돼 있다. 유럽의 균형잡기가 우리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EU의 다음 행보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
권지연 코트라 브뤼셀무역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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