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이씨 완풍대군파 양도공종가
영광 전주이씨 완풍대군파 양도공종가 이야기는 한편의 대하사극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하나뿐인 형이 완풍대군 이원계(1330~1388)다. 함경도에서 이자춘의 장남으로 태어나 배다른 두 동생과 우애가 깊었고, 29세에 종3품 판사에 오른 문무겸비의 충신이었다.
고려말 1380년 남원의 황산대첩에서 이성계와 함께 왜적을 물리친 공으로 정1품 완산군에 녹훈됐다. 1388년 요동정벌에 참가해 위화도 회군에 반대했으나 결국 회군대열에 참가했다.
고려에 대한 충절과 조선 개국의 천명 사이에 고뇌하다 이성계에게 정명시(正命詩)를 남기고 자결했던 비운의 인물이다. 그럼에도 이성계에 대한 양도공의 형제애는 깊었다. 이는 양도공의 후대가 이성계 왕실과 어떻게 지냈는지를 보면 잘 드러난다.
양도공 종가는 이원계의 차남 양도공 이천우(1354~1417)가 열었다. 아버지 대와는 다르게 나라의 기틀을 제대로 만들어주기 위해 사촌인 태종 이방원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다. 문무 겸장의 능력을 발휘하며 조선의 체계를 잡는데 적극 조력해 세 번 공신에 오른다.
높은 벼슬을 내리자 고사했고, 전답과 노비를 주려 했으나 이마저도 사양했다. 다만 “매사냥으로 체력을 튼튼히 하고 문치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라”는 자신의 충고를 태종이 수용하겠다고 밝혔기에, 송골매 그림 ‘이응도(二鷹圖)’와 양도공을 그려준 영정은 받았다. 세종은 아버지 태종을 종묘에 모실 때 배향할 신하로 양도공을 올렸고, 그의 사병 혁파 제안을 수용했다.
이천우의 증손자 이효상이 처가인 영광 묘장 당산마을에 이주해 현재까지 종가를 이어 오고 있다. 직전엔 담양에 살았는데, 이 역시 선대가 처가가 있는 쪽을 택했기 때문이다. 모계를 따르는 이주 과정에서 양성평등을 엿본다.
이효상의 증손 이응종(1522~1602)은 71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장성남문창의에 참여, 의병 3000명을 모아 출전시켰다. 수성대장으로 노병의 건재함을 과시한 그를 ‘임진수성사’에서 55명의 충의선비와 함께 추모한다.
양도공 종가가 배출한 인물중 19대 종손 이의갑은 ‘계자명’이라는 가훈을 병풍에 새겼다. 본보기가 되어 종가 후손들이 첨렴과 우국충정, 정의수호를 실천하도록 이끌었다.
종가는 구한말 의병장 이사유와 이화삼, 헤이그 밀사 이준, 순국독립지사 이홍섭, 제헌의원 이남규, 동양철학자 이을호, 국무총리 이낙연, 고용노동부장관 이기권 등의 근·현대 인물을 배출했다.
종택은 안채·부조묘(사당)·사랑채·곳간채(방앗간)·연못·정원·솟을대문·내삼문·하마석 등이 잘 보존돼있다. 완풍대군의 13세 종손 이상호(1662~1718)가 지극한 효성을 인정받아 숙종 때 포상 받은 효자정려가 가장 먼저 손님을 반긴다. 1616년에는 옆마을에 영당(현 묘장서원)을 건립하고 ‘영정’, ‘이응도’를 모셨다. 함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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