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창극단 15:1 경쟁 뚫고 입성
그들에게 듣는 인연, 그리고 다짐
“거문고가 만드는 리듬을 타고 논다는 것만 염두에 둬 주세요. 지금 정말 좋습니다.” 국립창극단 신작 ‘나무, 물고기, 달’의 리허설 현장. 신입단원 김수인이 원형 무대 중앙에서 연기와 소리를 마치자, 이자람 음악감독의 격려와 칭찬이 오갔다. 김수인의 역할은 물고기. “손짓, 몸짓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손은 지느러미가 돼 허공을 유영했고, 시선은 텅 빈 객석 구석구석을 맞췄다.
국립창극단이 5년 만에 신입 단원을 선발했다. 국립창극단의 벽은 높다. 단원 선발도 드문 데다 과정도 까다롭다. 지난해 8월 채용 공고가 나가자 몰린 인원은 45명. 1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단 세 명의 합격자가 나왔다. 국립창극단의 새 식구가 된 김수인(26), 김우정(26), 왕윤정(31)을 만나 국립창극단 입성기를 들어봤다.
▶‘꿈의 직장’ 입성기...각별한 인연으로 키운 도전=국립창극단은 소리꾼과 창극 배우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겐 ‘꿈의 직장’과 다름없다. 이 곳에서 당대 최고의 국악인들이 우리 문화예술의 꽃을 피웠고, 전통 문화계에 무수히 많은 스타들이 배출됐다. “소리를 하는 사람, 특히 극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국립창극단을 꿈꿀 거예요. 쉽게 볼 수 없는 대가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왕윤정)
국립창극단의 단원이 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서류심사 이후 소리와 연기, 무용 등 실기전형이 이어지고, 면접 전형에선 토론까지 진행한다. 이 과정이 완전히 ‘복불복’이다. 물론 실력은 기본이다. 연기 시험의 경우 선택지는 사전에 공지되지만, 제비뽑기를 통해 판소리 4바탕(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중 결정한다. 무용에 필요한 장단도 뽑기로 고른다. “어느 장단이든 소화할 수 있는 걸 보는 것 같더라고요.” (김수인)
토론은 올해 처음 생겼다. “15분 전에 주제를 알려줘요.” (김우정) 현재 문화예술계의 이슈 중 하나를 다뤘으나, 세 사람 모두 의외의 ‘주제’였다고 입을 모았다. 최종 면접 현장에서의 아찔한 기억이 이들의 생생한 표정에서 고스란히 전해졌다. “찬성, 반대, 사회자가 있는데 누가 어떤 역할을 할지 모르는 데다 심사위원들이 앞에 있으니 압박이 심하더라고요.”(왕윤정, 김수인)
신입 단원들 저마다 한 번씩 창극단과 연이 닿았다. ‘창극 배우’가 되는 꿈을 키운 계기이기도 하다.
동기 중 첫째인 왕윤정은 판소리 명창 왕기철의 딸이다. 왕윤정은 14년간 창극단에 몸담은 아버지에 이어 2대에 걸쳐 국립창극단 단원이 됐다. 첫 만남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어린 심청 역할이었다. “2012년부터 3년간 창극단에서 인턴 생활을 하게 됐어요. 그때 스릴러 창극 등 다양한 장르를 하면서 작품의 경험을 쌓게 됐어요. 정단원이 되고 나니 인턴 때와는 다른 사명감과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김우정은 지난해 국립극장 70주년 기념작으로 올린 ‘춘향’ 오디션에 합격해 객원 단원으로 호흡을 맞췄다. 풋풋하고 당찬 소녀 춘향이 김우정의 얼굴을 통해 새롭게 그려졌다. “막연한 바람이 현실이 되니, 객원 단원으로 무대에 섰을 때와는 마음가짐이 달라졌어요.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고 있어요.”
김수인에게도 국립창극단과 남모르는 인연이 있었다. 2014년이던 대학교 1학년 재학 시절, 창극 ‘배비장전’에 객원 단원으로 합류할 예정이었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면서, 공연이 취소됐어요. 한 달간 차를 빌렸는데 연습은 한 번 밖에 못했어요.” 당시의 ‘망연자실’은 7년 만에 회복됐다. “꿈꿔왔던 곳이라 제가 하는 행동 하나 하나가 소중하고, 국립창극단에서의 공연들이 의식있게 다가오는 요즘이에요.”
▶ 설레는 첫 무대...“제발, 연습한 만큼만 나왔으면”=세 사람은 올해 국립창극단의 신작 ‘나무, 물고기, 달’(3월 11~21일·국립극장 하늘극장)로 데뷔전을 치른다. 한국, 중국, 인도의 설화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작품은 소원나무로 향하는 인물들의 여정을 그린다. “자기 안의 행복”과 “진짜 나의 모습”을 찾는다는 주제를 담았다. 매일 대여섯 시간씩 연습에 매진하는 현재, 세 사람의 얼굴엔 기분 좋은 긴장감이 감돈다.
“아직 제 안에 불안하고 온전치 못한 부분이 있지만, 무대에 오르면 잘 하고 싶고 눈이 돌아가고 싶어요.”(김수인) “지금은 다른 것보다 딱 연습한 만큼만 나왔으면 좋겠어요. 음이탈만 안 나면 좋겠어요.”(왕윤정) “맞아요, 맞아요.” 김우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누구보다 공감했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제 자신이 가장 먼저 알거든요. 마인드 컨트롤을 하려고 노력 중이에요.”(왕윤정)
미래의 국립창극단 간판스타이자, 창극계의 ‘아이돌’이 될 세 사람은 크고 작은 목표를 품고 첫발을 딛고 있다. 저마다의 어깨 위로 감당해야 할 무게가 묵직하고, 걸음마다 새겨진 다짐들이 굳건하다. 그러면서도 경쾌한 템포를 잃지 않는다.
“창극단 합격 소식을 듣고 아버지께서 눈물을 보이셨어요.” 호탕하게 웃으며, 솔직한 입담을 꺼내놓던 왕윤정의 눈도 금세 불거졌다. “그동안 묵묵히 지켜만 보셨는데 굉장히 좋으셨나 봐요. 제가 아버지가 하신 것만큼 할 수는 없겠지만, 그 이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어느 작품을 만나도 제가 가진 향기를 풍길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왕윤정)
“제겐 어머니가 뮤즈거든요. 어려운 환경에서도 딸의 일이라면 아낌없이 뒷바라지 해주셨어요. 이제 다시 기초적인 것부터 다져가려고요. 세월의 변화에도 작품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탄탄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어요.” (김우정)
“합격 통지를 받고 입단 전부터 걱정을 많이 했어요.더디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많은 선생님들이 쌓아온 국립창극단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연습하고 공부하려고요. 그래야 수명이 길어질 거라 생각해요. ”(김수인)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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