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는 사신들을 따라 청나라를 다녀온 연암 박지원이 사행과정과 대제국으로 발전하는 청 문물을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여행견문록으로, 고전 중 고전으로 꼽힌다.1780년 정조가 건륭 황제의 칠순잔치에 파견한 진하특사를 이끈 팔촌 형 박명원 덕에 따라나선 것인데, 열하일기를 쓴 배경을 놓고 새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중국 근세사 전문가인 구범진 서울대 교수는 ‘1780,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21세기북스)에서, 박명원 일행과 당시 외교적 상황을 문서와 열하일기를 중심으로 꼼꼼이 살펴 '열하일기'의 주목적을 밝혀간다. 그 중심엔 박명원이 불상을 선물로 받아 와 성균관 유생들의 집단 반발을 불러일으킨 ‘봉불지사’ 사건이 있다.
박명원 일행은 1780년 음력 5월25일 서울을 떠나 8월1일 베이징에 도착한다. 청나라 예부가 이를 황제에게 알리자 열하로 보내지 않고 왜 붙잡아두냐며 역정을 낸다. 이에, 일행 일부가 부랴부랴 짐을 꾸려 8월9일 열하에 도착한다. 일행은 건륭 황제의 유례없는 파격적 대우을 받았다. 하례 때 청 관원 2,3품과 자리를 같이하고 공연 관람도 같이 하며 특별한 관심을 나타냈다. 이에 청 예부는 감사의 글을 올리라며 재촉했고 박명원은 이에 응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청 예부와 박명원은 몇 차례 부딪혔다. 예부가 외교적 관례를 무시하고 박명원 일행의 행보와 황제가 일행을 대우하고 선물한 것들을 저들 마음대로 작성, 별도의 외교문서를 조선에 보낸 것.
청 예부의 문서에는 박명원 일행이 판첸과 만나, “성스러운 스님을 우러러 바라보며 축복의 은택에 흠뻑 젖을 수 있었다”는 내용과 금불을 선물로 받았다는 대목이 들어있다. 박명원이 보낸 장계에는 들어있지 않은 내용이다.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있을 수 없는,‘봉불지사’의 오명을 뒤집어쓴 박명원 구하기에 나선 이가 구 교수에 따르면, 박지원이다. 연암은 ‘열하일기’에 그 과정을 소상하게 밝히면서, 예부가 첨가한 내용이 사실과 다름을 전한다.
‘성스러운 스님’ 운운은 예부가 제멋대로 적어넣은 것이고, 박명원은 줄곧 머리를 곧추 세우고 있었다고 증언한다. 또한 선물로 받은 불상을 놓고 일행이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생생하게 전하는데, “판첸에게서 받은 불상은 거의 1척 크기로 나무를 깍아 만들어 도금 처리한 것으로 보이는데 창졸간에 이를 받고는 일행 상하가 어쩔 줄 몰라 했다”고 적었다. 저녁에 박명원에게 대책을 물으니, 궤짝을 얻어달라 시켰다고 답했는데, 박지원이 좋은 생각이라며, 강물에 띄워 보낼 작정 아니냐고 말해 일행이 자조의 쓴웃음을 지었다며, 당시 상황을 생생히 전했다.
즉 열하일기는 박지원이 당시 경험하기 힘든 청나라 여행기이자, 봉불지사 사건으로 죄인으로 몰린 사촌형 박명원과 곤경에 처한 일행을 변호하기 위해 쓴 것이란 게 저자의 해석이다.
이 난감한 불상 선물을 박명원은 황제의 뜻으로 여겨 장계의 별단을 붙여 정조에게 보고했고, 결국 불상은 일행이 돌아오는 길에 묘향산 사찰에 모시게 했다.
책은 추리소설 못지않은 흥미로운 전개와 1780년 대청외교의 이례적 장면, 한중 외교사의 결정적 순간을 보여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구범진 지음/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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