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설주 위에 북어 두 마리를 명주실로 묶어 걸어둔다. 우리 가족을 지켜달라는 뜻이다. 가게가 잘 되게 해달라는 뜻이다. 김수로왕릉 대문 문설주 위에도 물고기 두 마리를 조각했다.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금제허리띠에도 물고기가 달려 있다. 물고기들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기원전 210년 진나라 시황제가 죽고 기원전 202년 유방이 한나라를 세우고 고조에 등극한다. 흉노 묵돌선우(冒頓單于·재위 BC 209~BC 174)는 기원전 203년 한고조 유방 32만대군을 백등산에서 괴멸시킨다. 이어 대월지국을 공격한다. 아들 노상선우(老上單于·재위 BC 174~BC 162)는 월지왕을 죽이고 그 머리뼈로 술을 마신다. 월지는 감숙(甘肅)을 떠나 서쪽 대완(大宛·Fergana)을 지나 대하(大夏)를 치고 규수( 水)로 도성을 삼아 다시 나라를 세운다. 기원전 1세기 월지는 박트리아로 들어가 스키타이를 몰아낸다. 인도로 눈을 돌려 인더스강 북안과 갠지스강 일대를 장악하고 쿠샨왕조를 건국한다. 쿠샨왕조가 갠지스를 지배한 뒤 3대 카이슈카왕은 아요디아에 지사를 파견하여 위임통치한다. 갠지스강 중류 아요디아를 중심으로 코살라국이 있었다. 코살라국 람왕은 갠지스강에 큰 홍수가 났을 때 70대 선조 마누를 구해 준 물고기를 신어(神魚·물고기 토템)로 삼았다. 코살라국 수도 아요디아에서는 신어를 쌍어로 표현한다. 신어는 왕을 수호하는 신이다. 신어신앙은 아요디아 민간에도 널리 퍼졌다. 범람한 갠지스강물이 집으로 들어왔을 때 신어가 집안사람들을 안전하게 지켜준다고 믿었다.

쿠샨왕조에게 갠지스강 중류를 빼앗긴 코살라국 왕족들은 아요디아를 떠난다.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동북쪽 바오산(保山)을 넘어 윈난(雲南) 대리(大理)에 이른다. 보주(普州)에 정착한다. 지금 안악이다. 안악 서운향(安岳 瑞雲鄕) 보주허씨 집성촌 뒷산 암벽에 새긴 신정기(神井記)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 “동한 초에 허황옥이라는 소녀는 용모가 수려하고 지략이 뛰어났다(東漢初許女黃玉姿容秀麗智勇) 정묘년에 기근이 들어 아이 젖을 먹일 수 없었다. 하늘에 도움을 빌자 우물에서 물고기가 뛰어올랐다. 매일 두 마리씩 낚아서 유즙을 만들어 먹였다. 그래서 허씨족이 오늘날과 같이 번창한 위대한 씨족이 되었다.”

기원후 47년 후한은 식민지 남군(南郡)을 세우고 과도한 세금을 부과한다. 아요디아에서 이주해 온 허씨들은 반란을 일으킨다. 결국 후한 관군에게 패하고 무한(武漢)으로 또다시 강제이주한다. 이듬해 48년 허황옥은 가야로 망명한다. 허황옥은 마중 나온 가락국 김수로왕에게 자신을 소개한다. “저는 아유타국 공주입니다. 성은 허이고 이름은 황옥이며, 나이는 16세입니다”(삼국유사 ’“가락국기’ 妾是阿踰陀國公主也 姓許名黃玉年二八矣).

김수로왕은 허황옥과 혼례를 치른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결혼이다. 슬하에 아들 열과 딸 둘을 둔다. 그중 두 명의 자녀에게 허씨 성을 줬다. 그래서 지금도 김해 김씨와 허씨는 서로 결혼하지 않는다. ‘허왕후’ 이야기를 김해문화재단에서 창착 오페라로 만들기도 했다.

우리는 오래 동안 단일민족 신화에 속고 살았다. 역사는 오래전부터 국제적이었다고 말한다. 2020년 인구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년 동월 대비 이혼 건수는 1.1% 증가했는데 혼인 건수는 4.2% 줄었다. 사망자 수는 2.7% 증가하는데 출생아 수는 오히려 7.5% 줄었다. 2만3651명이 태어나고 2만3193명이 죽었다. 인구가 1799명 감소했다. 정부 수립 이후 처음이다. 우리와 더불어살기를 원하는 다문화인들은 우리를 지켜주는 물고기 두 마리가 될 것이다.

최석호 한국레저경영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