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와 출연 배우 윤여정이 미국 영화계에 만연한 ‘백인중심주의’를 시원하게 격파했다.

‘미나리’는 한국계 미국 감독 정이삭(리 아이작 정)이 연출하고 배우 윤여정, 한예리 등 한국배우와 스티븐 연 등 한국계 주연배우를 캐스팅했다. 그리고 윤여정의 여우조연상 수상은 실현됐다. 그저 외국어영화상에나 후보로 올렸을 터인, 과거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2021년 이 영화를 통해 벌어진 것이다.

아카데미 4개 연기상은 백인이 아닌 배우가 수상할 확률이 매우 낮다. 이는 백인중심주의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 하고 있다. 2016년엔 남녀 주조연상 후보 20명중 한 명도 유색인종이 없어 흑인 배우들의 시상식 보이콧 움직임마저 있었을 정도다.

아시아계에 대한 대우는 더욱 박하다. 윤여정이 ‘사요나라’(1957)의 우메키 미요시 이후 64년 만에 역대 두 번째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아시아 배우라는 기록을 세웠다는 사실은 그간 아시안 디스카운트가 얼마나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연기상을 수상한 흑인 배우는 많지만 아시아 배우는 단 한차례뿐”이라며 “만약 윤여정이 수상한다면 한국 관객 입장에서도 즐거운 일이지만 미국에서도 신선한 일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현지 영화계의 백인중심주의는 뿌리가 깊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이어 올해 1월에도 영화 ‘미나리’는 본상의 곁가지 취급을 받는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심지어 수십개의 연기상을 받은 윤여정과 한예리는 당시 연기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이에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리 아이작 정은 미국인 감독이고, 영화는 미국에서 촬영됐으며, 미국 회사가 자금을 지원했다”며 “영화 주관단체인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가 바보 같아 보인다”고 비판했다.

비록 수상까지는 이어지지 못 했지만 ‘미나리’의 스티븐 연은 아시아계 미국인으로는 최초로 후보에 올랐다는 점에서 아카데미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역할을 했다.

‘사운드 오브 메탈’에 출연한 영국인 리즈 아메드는 무슬림 최초 남우주연상 후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채드윅 보즈먼은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로 후보에 올랐고, 수상하게 되면 사후 수상하는 세 번째 배우가 된다.

정이삭 감독과 경합했던 ‘노매드랜드’의 클로이 자오 감독에게 아카데미 감독상이 돌아간 것도 백인중심주의에 날린 큰 한방으로 평가된다. 남우조연상도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의 흑인 배우 다니엘 칼루야에게 돌아갔다.

윤여정이 이번 아카데미에서 거둔 족적과 유색인종들의 선전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아카데미의 백인중심주의를 허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조용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