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리딩방 들어가보니...

“‘칠리즈’ 오른다, 대기하세요”

빗썸 오른 랠리·오션프로토콜

세 코인 순식간에 500억 거래

리딩방 믿고 ‘묻지마 투자’ 속출

상·하한가 없어 수백배 급등락도

“신규 상장하는 ‘칠리즈’ 지폐(1000원 이상 오른다는 은어) 갑니다. 다들 대기하세요.”

지난 29일 한 코인 텔레그램 리딩방. 방장이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에 신규 상장하는 종목이 급등한다’는 정보를 공지했다. 이에 투자자들은 ‘얼마 투자하면 되나요?’ ‘최고액 얼마가 될 것 같나요?’ 등 연신 질문을 이어갔다. 방장은 ‘세력(급등을 조작하는 이들) 묻었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고 자신했다.

약속의 오후 2시50분. 빗썸에 ‘칠리즈·랠리·오션프로토콜’ 세 개의 신규 종목이 상장됐다. ‘상장 대박’을 기원하는 리딩방 투자자들은 한목소리로 ‘영·차·영·차’ 한 글자씩 기도를 올렸다. 하지만 칠리즈 코인은 신규 상장 후 20% 상승세를 기록한 뒤 횡보했다. ‘왜 저것밖에 오르지 않느냐’는 한숨이 곳곳에서 쏟아졌다. 동시에 같은 시간 상장한 ‘랠리’ 코인은 950원에서 2000원까지 상승하며 100% 가까운 상승률을 기록했다. 방장은 ‘세력의 화력이 랠리로 간 듯한데 그래도 소소하게 먹지 않았나. 다음 정보를 기대해 달라’고 다독였다. 신규 상장한 세 코인은 상장한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500억원어치 가까이 거래됐다.

상한가와 하한가 정책이 없는 코인시장에서 상장 시 코인 시세가 수백배로 급등했다가 급락하는 사례가 속출하자, 신규 상장 코인이 리딩방의 타깃이 되고 있다. 이에 비례해 투자자들의 피해 가능성 또한 한층 커지고 있다. 리딩방의 정보만 듣고 ‘묻지 마 투자’를 하는 이들이 늘자, 거래소를 사칭하거나 허위 상장하는 등의 사기 사례도 다수 발견된다. 업비트는 상장 사기 제보 채널이 개설된 지난해 12월부터 현재까지 총 61건의 상장 사기 제보가 접수됐다고 밝혔다.

한국 가상자산시장이 이처럼 시세조종의 ‘투전판’으로 전락하고 있는 데는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가상자산)의 ‘천국’으로 불리는 구조가 작용한다. 한국 4대 거래소로 불리는 빗썸은 상장된 종목 중 원화 거래가 가능한 종목이 150여종에 달한다. 이에 반해 미국의 코인베이스는 50여종, 유럽 비트스탬프는 10여종에 불과하다. 신규 상장하는 암호화폐도 해마다 늘고 있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4대 거래소에 신규 상장하는 암호화폐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18년 116개, 2019년 154개, 지난해는 230개에 달한다.

이 같은 ‘무더기 상장’이 가능한 이유는 유가증권시장과 달리, 100% 민간 거래소 자율로 이뤄지는 상장 시스템 때문이다. 유가증권시장에 주식이 상장하려면 통상 까다로운 절차를 반년 이상 거쳐야 하지만 가상자산은 코인개발사의 신청을 받고 상장하는 데까지 두 달이면 충분하다.

이에 반해 외국의 거래소 상장심사 과정은 매우 까다롭다. 일본은 검증되지 않은 암호화폐의 거래소 상장이 원천 금지돼 있으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는 법으로 관리·감독 중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블록체인협회 관계자는 “법이 없는 상황에서 자율적으로 시장에 맡기는 것은 사기 리딩방·급등락 등 폐해가 계속되게 방치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관리·감독할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용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