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공항철도’ 발간을 앞두고 아파트 승강기가 멈추었다. 승강기를 교체한다고 운행을 멈추어 4월 초부터 한 달간 생필품을 배낭에 메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마침 생수와 쌀이 떨어졌는데, 승강기 교체 안내방송을 했다는데 시집 준비하는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꼭대기 12층에 사는 사람들은 어찌 살꼬’ 생각하면 중간층인 내가 불평할 처지가 아니다. 수돗물을 끓여 마셨고, 급할 때는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들이켰다. 며칠 지나 승강기 없는 삶에 익숙해졌는데, 신간홍보용 책 상자를 받을 수 없는 게 문제였다. 시집이 가볍다 해도 50부를 혼자 들고 계단을 올라가기 싫어, 경비실에 택배를 보관해 달라고 부탁했다.
시집 홍보가 내겐 가장 어렵다. 문학담당 기자들이 자주 바뀌어 e-메일 주소를 아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3월’을 읽으며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시작했다. 봄을 열었으나 봄에 잊힌 3월. 날씨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사회와 역사에 대한 발언으로 이어졌다.
간담회를 마치고 코냑 두 잔을 마시며 컵라면으로 허기를 때운 그 날,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책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나 며칠 전에 2쇄를 발주했다. 시집에 나오는 몇몇 표현 때문에 내 시의 오랜 애독자와 친구도 잃을지 모른다고 걱정했는데, 절친인 M(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에게서 “이번 시집 너무 좋다. 여러 번 깜작깜작 놀랐다. 버릴 시 하나도 없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펴낸 6권의 시집을 다 읽은 그녀를 놀라게 했으니,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했다는 기쁨이 몰려왔다. 그녀는 특히 ‘공항철도’와 ‘3월’이 좋다고 했다.
‘3월’을 완성한 뒤에 ‘이 시를 발표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시집 출간을 서둘렀다. 시 청탁이 안 오니 시집을 발간할 수밖에.... ‘미투’ 이후로 청탁이 뜸해져 최근 2년간 내가 문예지에 발표한 시는 단 한 편, ‘시와 편견’에 실린 ‘너무 늦은 첫눈’뿐.
출판사를 운영하면 내 책을 누가 샀는지, 성별과 연령층을 알 수 있다. 내 시집의 주된 독자는 50대, 60대 그리고 40대. 서점의 판매 통계를 보면 ‘공항철도’를 가장 덜 구매하는 계층은 20대 남자와 30대 여성이다. 20대 남자들이 내 시집을 안 읽는 건 이해가 되는데, 30대 여성들이 ‘공항철도’를 외면하는 건 의외였다. 출간 일주일이 지나도록 알라딘에서 나의 신작 시집을 구매한 30대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30대 남성보다 30대 여성들이 내 시집을 더 안 사 본다.
그 이유를 젊은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요새 젊은 사람들은 비트코인에 빠졌어요. 365일 24시간 비트코인 하느라 책 안 읽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코로나19 이후로 콘서트나 낭독회 등 대면 문화행사가 없어져 문화욕구를 분출할 데도 없고, 미래는 불안해 가진 돈 탈탈 털어 비트코인 사고 수시로 휴대전화를 열어 등락을 확인한다. 그녀도 비트코인으로 돈을 두 배로 불렸다.
‘젊은 시선을 붙들려면 나도 책 광고를 해?’ 고민하는 내게 그녀가 말했다.
“광고를 봤다 해도 ‘최영미 시집이 나왔나 보다’ 하지 책 안 사요.”
요즘 서점 판매대는 자기개발서나 투자 관련 서적, 아니면 판타지소설이 점령하고 있다. 시는 한가한 눈에만 보이는 기쁨. 내 그걸 모르지 않았으나 그래도... 이번에도 내 계산이 틀렸다.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도다.
시인·이미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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