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옥천조씨
영월 장릉의 장판옥에는 충신 236인이 모셔져 있는데, 그곳에 단종 복위 운동을 하다 순절한 옥천(순창) 본관의 조숭문-조철산 부자(父子)의 이름이 들어있다.
‘세종 르네상스’의 중심이자 조선 충신의 표본인 성삼문의 고모부인 절민공 조숭문(?~1456)은 아들 조철산과 함께 1456년 6월 단종 복위사건과 연루돼 숨졌다. 장판옥에는 성삼문 일가와 조숭문 일가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있다. 정조때 ‘충효(忠孝)’의 상징으로서 복권됐고, 조숭문은 절민공, 조철산은 교관공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옥천조씨 절민공파의 ‘의리’는 고려말에도 있었다. 종가에 따르면, 고려 문하시중을 지낸 조장(?~?)이 옥천조씨 시조로 가문을 열었으며, 조장의 증손자 조원길(?~?)이 공양왕을 세우고 공신에 올라 옥천부원군에 봉해졌다. 포은 정몽주 등과 뜻을 같이한 그는 고려가 망하자 은거했다. 그의 아들 조유(1346~1428)가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킨 두문동 72현 중 한사람이고, 그가 순천 겸천(현재 주암)으로 입향했다. 세종 조유에게 효자정려(효자부정조유지여)를 하사했다. 장릉에 기록된 조숭문은 조유의 아들이다.
조숭문의 6세손 조종원(?~?)은 내금위 훈련원봉사로 임진왜란 때 한양이 함락되자 조정, 조효원 등과 의병 700여명을 규합해 고경명장군 휘하의 전군수어장으로 활약했다. 금산전투에서 전사해 선무원종공신에 올랐다.
가훈은 겸인오덕(謙忍悟德:겸손,인내,깨달음,덕)이다. 9세손 조치형(1642~1754)이 1676년에 종택을 건립해 현재에 이른 조승훈가옥에는 안채와 사랑채, 곳간채, 제실, 아래채, 중문간 등이 보존돼 있다. 사랑채 문은 언제어디서나 항상 자신을 낮춰 겸손한 자세를 잊지말도록 아주 작게 만들었다.
거북이 닮은 산이 있는 구산마을의 연정평에서 농사를 운영하는 부자 종가로서, 징을 치면 농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바가지를 하나씩 들고 곳간채에 와서 스스로 쌀 한 바가지를 퍼가도록 했다고 한다. 종가에서는 곳간채를 마을 공동 관리의 의미로 ‘곳집’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구산마을에서는 종가를 중심으로 정월대보름때 액운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는 구산 용수제를 지낸다. 이 집안에서 만든 협동조합에서는 제사에 올리는 조청과 엿을 종가음식으로 개발해 대한민국 식품명인으로 지정됐다. 함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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