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보리, 이-팔 분쟁·미얀마 사태서 美·中 등에 휘둘려

안보리 침묵 속 민간인 희생자 급격히 증가…비토권 제한 개혁 논의 공전

코백스, 모금 실적 상회했지만 강대국 ‘백신 싹쓸이’에 구매 난항

印 수출 통제에 선진국 ‘부스터샷’·접종 확대까지…백신 확보 전망 어두워

올해 들어 국제 기구의 대표 격인 유엔(UN)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와 ‘미얀마 사태’에 대해 비토권을 지닌 상임이사국 미국과 중국의 반대로 공동성명조차 내지 못했다. [로이터]
올해 들어 국제 기구의 대표 격인 유엔(UN)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와 ‘미얀마 사태’에 대해 비토권을 지닌 상임이사국 미국과 중국의 반대로 공동성명조차 내지 못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인권 유린과 전쟁, 전염병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등 ‘국제적 비극’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지만 유엔(UN)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의 움직임은 전 세계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리더십을 발휘해 전 세계 각국을 이끌며 해결사 역할을 자임해도 모자를 이 시기에 국제기구들은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강대국들의 이해 충돌에 휘둘려 방향을 잃은 듯한 모습을 거듭 보이고 있다.

국제기구들의 권위가 무너진 모습이 수차례 연출되고,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모습이 보이자 국제기구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연일 높아지는 실정이다.

이-팔 분쟁·미얀마 쿠데타에 입 뻥끗도 못하는 유엔

올해 들어 국제기구의 대표 격인 유엔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앞에 맥을 못 추는 모습을 연이어 연출했다.

유엔의 문제 해결 능력에 결정적으로 의문점을 남긴 대표적인 사건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와 ‘미얀마 사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이-팔 분쟁 중단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공개·비공개회의를 잇달아 소집했지만 안보리 차원의 공동 성명을 내놓는 데 실패했다. 이스라엘의 최대 우방인 미국이 네 차례 열린 회의에서 모두 반대했기 때문이다.

미얀마 사태에선 이-팔 사태와 반대의 상황이 연출됐다.

미국과 영국 등 서방 국가들이 주도해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와 민간인 학살을 규탄하는 내용을 담은 공동 성명은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에 가로막혀 도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재나 군사적 개입 등 미얀마 군부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직접적이고 강력 대응은 언감생심이었다.

‘비토(Veto·무조건적 거부)권’을 가진 강대국이 유엔 안보리의 목소리를 빼앗아가는 동안 사태가 발생한 지역에선 무수한 민간인들이 희생됐다.

비록 이집트 등 중동 국가들과 유엔의 중재 끝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이 무조건 휴전에 합의했지만 이미 무수한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한 뒤였다. 가자지구에서는 232명이 사망했으며, 이스라엘 측에서도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2월 1일 쿠데타 발발 이후 미얀마에서는 이어진 시민 저항으로 지난 18일 기준 802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젠 민주화 세력이 반군과 연합해 군사적 대항에 나서는 등 내전 국면으로 치달으며 희생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스테판 듀자릭 유엔 대변인은 “미얀마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고 석 달이 넘어가면서 시민들의 존엄이 무너지는 것에 대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엔 자료]
[유엔 자료]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남발을 막기 위해 ‘반인도적 범죄에는 거부권 행사를 금지해야 한다’는 개혁안 등이 매년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등 비토권을 지닌 상임이사국 5개국의 반대로 실현 가능성이 사실상 ‘제로(0)’에 가까운 상황이다.

‘자국 우선주의’에 치이는 코백스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집단면역 달성을 위한 국제기구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프로그램도 ‘제 코가 석자’인 전 세계 국가들의 외면을 받으며 지지부진한 형국이다.

세계 190개국이 참여한 국제 백신 공유 프로젝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의 개도국 지원 프로그램인 ‘코백스 AMC(Advance Market Commitment)’엔 지난해 목표치(20억달러)를 상회하는 24억달러가 모였다.

하지만, 강대국들이 ‘백신 싹쓸이’에 나서며 코백스는 백신 물량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사노피, 노바백스 등 비승인 백신에 의존 중이다.

지난 3월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위치한 에카 코테베 병원의 한 의료진이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제공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기 전 준비한 모습. [로이터]
지난 3월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위치한 에카 코테베 병원의 한 의료진이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제공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기 전 준비한 모습. [로이터]

세계 최대 백신 생산국인 인도가 지난 3월부터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자 자국민을 우선해 접종하겠다면서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수출 물량을 틀어쥐며 코백스의 백신 공급난은 더 심화됐다.

헨리에타 포어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총재는 “5월 말 1억4000만회분, 다음 달 말에는 1억9000만회분의 코로나19 백신이 부족할 전망”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기에 백신 접종 선진국들이 12세 이상 청소년에 대해 백신 접종을 확대하고, ‘부스터샷’ 접종에 나서겠다고 밝히며 백신 물량을 틀어쥐고 있는 상황에 코백스의 백신 구매 가능성은 갈수록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코백스에 대한 백신 공급을 우선시하고 앞당겨야 한다 주장하는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의 목소리는 사실상 ‘울림 없는 메아리’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