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소싸움 돔경기장을 찾았다. 이곳은 2002년 7월에 착공하여 2007년 1월에 준공되었는데 세계 최초의 소싸움 전용 개폐식 돔경기장이다. 소싸움으로 유명한 청도군의 관광사업 유치를 통한 지역경제 발전과 수익창출을 위해 세워졌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장기간 휴장에 들어갔었는데 지난 3월 20일부터 문을 열어서 운좋게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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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싸움은 경기장에서 두 마리의 황소가 싸우는 힘겨루기를 말한다. 힘겨루기는 시종일관 박진감 넘치는 경기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또 득점 방식이 복잡하지 않고 승패의 판가름이 명백하여 판정의 불만이나 번복이 거의 없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두 마리의 황소가 경기장을 종횡무진하며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마치 소가 사람의 말귀를 알아듣는 듯 심판의 중재에 순순히 따른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두 마리의 수소는 한참 힘을 겨루다가 청색 동그라미 표시가 그려진 소가 도망을 가면서 붉은색 동그라미가 그려진 소가 승리했다.
“이 돔경기장은 향토 고유의 전통 민속 문화인 청도 소싸움을 세계적인 문화관광 상품으로 널리 알리고자 지었습니다. 현재 이곳은 국내외 관광객 유치를 통해 우리 청도가 세계적인 소싸움 관광지로 도약하고 소싸움을 건전한 레저문화로 성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청도 소싸움은 스페인의 투우와 다릅니다. 스페인 투우는 투우사가 소를 죽이지만 청도 소싸움은 소가 힘겨루기를 해서 힘이 부족한 소가 도망을 가는 것으로 승부를 결정짓습니다. 아주 명쾌합니다. 그리고 소는 비록 짐승이지만 진 소는 결과에 승복할 줄 압니다.” 이 경기장은 세계 최초의 자동 개폐식 돔형으로 전천후 경기가 가능하며, 근린생활시설을 갖추어 다양한 메뉴의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장점도 갖추고 있다.
“소의 무게는 1톤이 넘습니다. 그렇게 큰 소가 싸우며 경기장 내를 종횡무진하면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아주 스펙터클합니다. 그리고 경기가 없는 날에는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하여 연중 소싸움경기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연 및 행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청도 소싸움 경기장이 있음으로 해서 이곳을 찾는 시민들이 숙박도 이용하시고 지역 식당에서 식사를 합니다. 그리고 청도의 특산품인 한재미나리와 청도반시도 사가지고 갑니다. 지역경제에 많은 도움이 되는 셈입니다.” 이승율군수님의 말씀에 청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듬뿍 느껴졌다.
경기를 본 후 식사를 하기 위해 청도역 앞에 형성된 추어탕 전문식당 거리로 갔다. 추어탕은 남원추어탕이 이름 높은데 이곳에 전문식당 거리가 있는 것이 조금 의아했다. “원래 추어탕은 남원 아닌가요? 그런데 청도에 추어탕이 유명한 이유가 있습니까?” “청도 추어탕은 남도 추어탕과 달리 시원한 국물에 시래기를 듬뿍 넣은 것이 특징입니다. 물은 동창천의 1급수를 사용해 맛을 더하고 미꾸라지뿐만 아니라 다양한 잡어들을 넣어서 비릿한 맛을 잡고 있습니다.” 청도 추어탕은 얼핏 보기에 배춧국 같아 보였다. 청도 추어탕을 맛있게 먹는 방법을 주인장에게 물었다.
“청도 추어탕에는 산초를 넣어 먹습니다. 이곳에서는 제피라고도 하는데 산초를 넣게 되면 비린 맛도 제거하고 소화기능도 높여줍니다. 그리고 또하나 우리 가게에서 직접 담근 간장으로 간을 맞추는 것이 맛의 비결입니다.” 주인장이 일러준대로 산초를 넣고 간장으로 간을 했다. 과연 미꾸라지 특유의 냄새도 나지 않았고 추어탕이 담백하고 구수하면서 감칠맛도 있었다. “저는 청도에 오면 이곳에서 추어탕을 먹고 힘을 냅니다. 추어탕 한그릇 먹고 나면 힘이 나거든요. 그래서 에너지를 얻어서 열심히 일합니다.” 이율기 회장님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추어탕을 먹고나니 속이 든든했다. 식사 후 다음 여정은 운문사였다. 차에서 내려 걸음을 옮기는데 솔바람길이 시원하게 찾는 이를 마중했다. <이전에는 게을렀더라도 지금 게으르지 않다면 그는 이 세상을 비추리라,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솔밭 어귀에는 법구경 한 구절이 새겨진 목판이 걸려 있었다. 구름을 벗어난 달, 운문사는 절 이름대로 정처없이 흘러가는 구름을 떠올리게 했다. 운문사(雲門寺)는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산에 있는 사찰이다. 신라 진흥왕 21년(560년)에 신승(神僧)이 창건하여 대작갑사(大鵲岬寺)라 하였다. 이후 원광법사가 세속오계를 내린 곳이기도 하며, 후삼국 시기 태조 왕건의 신라 정벌에 도움을 주었던 보양국사가 중창하였다. 왕건은 태조 20년인 937년 보양국사에 대한 보답으로 운문사에 토지 500결을 내리고 태조 26년(943년)에 운문선사(雲門禪寺)라 사액하여 운문사라 불리게 되었다. 1958년 불교 정화운동 이후 비구니전문 강원이 개설되었고 1987년 승가대학으로 개칭되어 승려 교육과 경전 연구기관으로 수많은 수도승을 배출하고 있다.
운문사 경내에 들어서자 청아한 새소리와 청명한 공기가 탁한 머리를 맑게 해주는 것 같았다. 경내에는 보물 제193호인 금당 앞 석등, 보물 제208호인 동호, 보물 제316호인 원응국사비, 보물 제317호인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318호인 사천왕석주, 보물 제678호인 삼층석탑, 천연기념물 제180호인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가 있다.
해설사가 운문사에 대한 안내를 해주었다. “운문사의 원래 이름은 대작갑사(大鵲岬寺), 한자명은 어렵지만, 우리말로 풀이하면 큰까치절입니다. 우리나라 절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절도 쓰러졌다가 다시 일으켰다가를 계속해왔습니다. 운문사는 고려시대 원흥국사 때의 불사가 가장 컸고 그때 이 운문사의 체제가 다 갖추어졌습니다. 그리고 이곳이 비구니 사찰이 되면서 비구니 스님들이 이 운문사를 아주 예쁘게 가꾸어서 지금은 경치가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절이 되었습니다.” 운문사 작압(鵲鴨)은 운문사의 전신인 대작갑사의 유래를 알게 하는 유일한 건물이다. 작압이라는 말은 까치가 땅을 쪼고 있는 장소에 절을 지었다는 작갑사에서 유래했다. ‘삼국유사’는 그 전설적인 얘기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보양스님이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오는 길에 배로 서해를 건너자니 용왕이 그를 용궁으로 청하여 금빛 비단 가사한 벌을 주면서 그의 아들 이목(璃目)을 데리고 가 작갑에 절을 지으라고 당부했다. 보양스님이 절을 세우려고 북쪽 산마루에 올라 살펴보니 산 아래 5층 황탑이 보였다. 그래서 내려와 찾아보았는데 아무 흔적도 없어 다시 산으로 올라가 탑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니 까치들이 땅을 쪼고 있었다. 그러자 용왕이 ‘작갑’, 곧 ‘까치곶’이라 한 말이 떠올랐다. 다시 내려와 그곳을 파 보니 무수한 벽돌이 묻혀 있었고, 마침내 그 벽돌로 탑을 쌓으니 한 장도 남은 게 없었다. 그리하여 여기에 절을 짓고 그 이름을 작갑사라 했다.
절 서편으로는 운문천이 흐르는데 물이 아주 맑았다. 유홍준 교수가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2권』에 ‘운문사의 아름다움 다섯’을 다음과 같이 꼽고 있다. 첫째 250여명 비구니 승가대학 여승들의 모습, 둘째 비구니 승가대학에서 열리는 장엄한 새벽 예불, 셋째 운문사 입구 조선 소나무밭길, 넷째 높고 깊은 산속에 위치하면서도 평지에 지은 사철로서의 평온함, 다섯째 우리 역사의 뛰어난 유산인 삼국유사가 씌어진 절이라는 점 등이다.
확실히 운문사는 여승들의 도량이어서인지 다른 절에 비해 신비한 기운이 느껴졌다. 맑은 개울과 지천으로 핀 꽃이 여기저기 널려있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건물들, 어느 곳에 눈을 두어도 마음이 평안했다. 그동안 여러 곳을 다녀보았지만, 이곳 운문사에 방 한 칸을 얻어 작품을 쓴다면 좋은 글이 술술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 작품으로 나의 가족 이야기를 담은 소설 『7남매』를 구상 중인데 꼭 이곳에 와서 차분하게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운문사를 내려왔다.
“청도는 화랑의 발상터이며 우리 조국의 근대화, 잘먹고 잘살자는 새마을운동의 발상터가 된 곳입니다. 그리고 사계절 모두 아름다운 장소입니다. 이틀 동안 청도를 둘러보면서 소감이 어떠셨는지요?”
“청도를 둘러보니 곳곳마다 너무 예쁜 장소가 많아서 마치 동화 속에 제가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지금은 봄이라 곳곳에 예쁜 꽃들이 있어서 눈이 호강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기가 너무 좋아서 마음속의 답답함이 싹 다 날아가버린 느낌입니다.”
“맞습니다. 청도는 생명의 고을입니다. 그래서 많은 시청자님들이 제고향 청도를 기억해 주시고 청도에 놀러와 주신다면 저희 청도민들이 열심히 여러분들을 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주 애용해 주세요.”
어느 곳을 가나 물소리, 새소리, 정겨운 풍경들이 마음을 사로잡았던 청도……. 정말 이참에 청도에 그냥 안주하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 들 정도였다. 솔직히 별 기대 없이 청도에 왔는데 힐링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싶을 정도로 몸과 마음에 새로운 활력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떠날 때 마음이 허허롭지 않고 무언가 꽉 찬 느낌이다. 가을에는 그 유명한 운문사 은행나무를 보기 위해 다시 청도를 찾아야겠다.
<글.사진 전정희 작가>
kim3956@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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