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해주최씨 종가터에 의병청지와 표지석
최경회 진주성 순절,부인 주논개 적장 익사시켜
첫 부인 유언 따라, 의리-품격 갖춘 논개와 결혼
종가 앞산 오성산성엔 최경운 장군과 500열사
최경장이 의병대장 승계, 권율장군 관군과 공조
유럽 보다 먼저 사립교육기관 세운 최충의 후예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바다 건너 왜적이든 육지의 적이든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호남에서 의병 궐기가 많았던 것은 농민,어민,중인,노비,사림,퇴직 관료·장병 등 다양한 계층을 조직적으로 편성하고 전략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민간 중심기관 ‘의병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남 화순 만연산 자락 화순천 앞에는 호남 의병군 본부였던 ‘의병청’의 터(화순읍 상삼2길 31)가 있다. 다양한 계층의 장병과 각지에서 답지한 군수물자를 모아, 훈련,군수,출전,치료 등을 담당했다. 금산, 진주 등지의 승전을 이끈 곳이다.
호남의병의 중심엔 해주최씨 집안과 최경회 장군이 있다. 해주최씨 승지공파 고사정종가에는 지금도 커다란 의병청 표지석이 있다. 주논개 열사가 그의 부인이다.
논개 열사는 살림살이는 어려웠지만 주희의 후예인 신안 주씨 양반가 딸로, 최경회 장군이 첫 부인과 사별할 때, 집안 일을 도와주던 논개의 품격과 됨됨이를 알아본 부인의 유언에 따라 부부의 연을 맺게 됐다.
몇몇 야화(野話)에 주논개 열사를 관기로 잘못 표현된 것은 이미 200여년전 바로잡았음에도 불구하고 21세기에 여전히 잘못된 정보가 남아 있는데, 이번 기회에 주논개 열사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코리아헤럴드 사장과 성균관대 교수를 지낸 문인 변영로가 추모시에서 표현한 ‘강낭콩꽃 보다 붉은’ 구국의 열정을 모든 국민이 정확히 조명했으면 한다.
신라 개국의 주역 중 한 집안으로 알려진 최씨가 해주를 본관으로 둔 것은 고려초기 해주 토호였던 최온(?~?)으로부터 비롯됐고, 그의 아들이 바로 ‘해동공자’ 최충(984~1068)이다. 총리격인 문하시중에 오르고 국내 최초의 사립대 ‘9제학당’을 설립했다.
학제와 교수법 등에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1088년 체계화되지 않은 고등교육집단으로 만들어졌다가 1156년에야 대학교로서의 면모를 갖춘 최초의 서양 사립대 볼로냐대 보다 빠르다.
최온의 15세손 진사 최윤범(?~?)이 영암에서 화순에 입향해 승지공파 종가를 열었다. 최윤범의 손자 최경운(?~1596), 최경장(1529~1601), 최경회(1532~1593) 삼형제가 의병청을 세운 주역들이다. 이들 3형제는 학포 양팽손의 아들 양응정(1519~1581)과 외종형제 간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삼형제는 화순 삼천리에 의병청을 설치하고 격문을 내서 전라도 일대에서 병사·전마·군량을 모아 전열을 정비했다. 최경운의 아들 최홍재(1560~1614)가 금산전투에 출병하는 고경명 의진에 지원군을 이끌고 출병했다. 비슷한 시기 의병대장으로 추대된 최경회는 전북 장수로 출전해 왜군을 격퇴시키고, 무주전투에서는 도요토미히데요시의 부하 적장을 활로 쏜뒤 ‘언월도’를 전리품으로 노획했다.
최경회는 영남으로 물러난 왜적을 진주성에서 크게 이겨 공포에 떨게 했다. 경상 병력을 모아 총력으로 공격하는 왜군에 맞선 2차 진주성 전투에서 김천일, 황진, 고종후 등과 함께 9일 밤낮을 항전했다. 원군은 없고 병기와 군량이 다하자, 북향재배하고 ‘형세가 궁하고 힘이 다하여 한 번 죽음으로 보답합니다’라며 촉석루 남강에 투신, 의연히 목숨을 바쳤다.
포위된 진주성 수성 과정에서 지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김제 출신 정평구라는 군사과학자가 만든 비행물체 ‘비거(飛車)’를 외곽으로 날렸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진주시가 추가고증작업과 함께 기념공원 조성에 착수했다.
동생 최경회 장군이 순절했다는 소식을 종군하던 장남 최홍우에게 들은 최경장은 의병대장 직을 이어받아 전쟁을 수행했다. 공조하는 과정에서 의병청의 존재를 잘 하는 권율이 임금에게 그들의 활약상을 전하자, 선조는 최경장을 ‘계의병대장(繼義兵大將)’으로 임명했다. 광해군 때엔 의병청에서 훈련시킨 의병군을 김덕령 휘하에 편입시켜 권율의 지휘에 따르도록 했다.
삼형제의 장남 최경운은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고을 사람 500여명과 함께 오성산성(전남기념물 제193호)을 지키다 순국했다. 1782년 정조의 명에 따라 화순 현감은 ‘오성산 최경운 전망 유허도(烏城山崔慶雲戰亡遺墟圖)’를 올렸다.
주논개(1574~1593) 열사는 진주성에 종군하던중 남편 최경회의 순절 소식을 듣고 복수를 계획한다. 왜장을 유인해 굵은 가락지를 열 손가락에 끼고 껴안은 손가락이 풀리지 않도록 한뒤 적장과 함께 진주 남강에 투신함으로써 일본군의 사기를 급전직하시켰다.
420여년을 지켜온 종가의 보물은 전시관을 지어 보관하고 있고, ‘고사정’과 안채, 우물터 등이 의병청지에 있다.
유물 중에는 임직왜란때 침략해온 일본군으로부터 노획한 일본 보물 문화재도 있다. 일제때 순사들이 이를 탈취하려고 했지만 종가의 지혜롭고 끈질긴 은닉,보존 때문에 실패했다. 의병청지 겸 종가 입구 회화나무는 일제 헌병이 언월도를 빼앗아가기 위해 종가 사람의 상투를 매달아 고문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지금은 주인과 손님의 더위를 식혀주는 그늘쉼터이다.
회화나무 앞에는 수천 장병의 식수를 조달한 우물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만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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