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덴마크 정보기관의 협조로 유럽 정상들을 도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2013년에는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 국가안보국(NSA)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도청했다”고 내부고발하면서 국제적 이슈가 된 바 있다.
도청 사건은 오래전부터 지속돼왔다. 북한에서는 김정남 후계자 논의 사실이 저우융캉(周永康)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의 도청을 통해 확인되면서 김정남·장성택이 처형됐고, 이스라엘은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를 도청했다. 국내에서는 A화학이 노조를 도청했다가 사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심지어 조합장선거 후보 사무실이 도청당하는가 하면, 지난해 모 육군부대에서 통신단 간부가 군단 지휘통제실을 도청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최근 도청기술이 고도화·첨단화하면서 도청탐지가 쉽지 않다. 온·오프(on-off) 기능을 갖춘 제품과 초저전력 신호 발신 기능이 탑재된 UWB(Ultra Wideband) 통신방식을 사용하는 도청기, 첨단 플라스틱 소재의 제품, 심지어 쌀알 크기의 초소형 도청기에 이르기까지 도청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도청장치도 소형화·첨단화하면서 그 모양새도 전원포트, 인터넷 포트, 계산기, 볼펜 등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고 있다. 도청기를 육안으로 찾아내기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는 도청뿐만 아니라 도청기를 소지하는 것 자체도 불법이다. 그러나 수백m 밖에서도 대화 내용이 또렷이 들리는 도청기를 구매하는 일은 매우 쉬운 일이다.
도청 위협의 대상은 어느 기관이나 시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특히 안보·외교정보 및 정책 등 국가 기밀 주요 정보와 첨단 산업 핵심 기술, 개인의 사생활 정보 등 불법적인 도청으로 인한 피해는 해당 영역뿐 아니라 국가적 손실로 이어지게 된다.
도청장비의 첨단화 추세와 주변국의 도청 능력 신장 등에도 우리나라 각 기관이나 시설은 도청위협에 대한 보안대책이 미흡한 실정이며, 도청 방지에 소극적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국정원은 국가정보보안 기본지침을 마련해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주요 시설에 대한 도청 방어 태세를 주문하고 있지만 기획재정부 및 행정안전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실 등 핵심 부처에서조차도 그 대응 태세는 미흡하다고 할 수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몇몇 부처는 이동형 탐지기를 이용해 주기적으로 기관장실 및 주요 회의실 등을 점검하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이동형 탐지장비만으론 완벽한 방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기관장이 재실 중이거나 주요 회의가 이뤄진 시점에서 on-off 기능을 이용해 도청을 감행하거나 첨단 도청장비를 이용해 대화 내용을 녹음, 야간에 일시적으로 외부로 송출할 수도 있다.
국방부, 외교부 등 주요 부처 및 산하기관, 서울시, 경기도 등 광역단체들은 24시간 365일 탐지 시스템을 도입, 상시 탐지를 통해 도청 방어 능력을 갖추고 있다. 여타 정부 부처 및 국가 주요 시설, 방위산업체, 핵심 산업기술을 보유한 기업들도 상시 도청 방지대책을 마련해 국가적 손실을 방지해야 할 때다.
류길호 입법정책연구회 사무총장 및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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