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진원박씨 장계파 종가
득량역 추억의거리, 차밭, 티벳박물관, 월곡영화골벽화마을, 벌교갯벌체험, 주암호 등 다양한 매력을 가진 보성은 ‘호남5현’ 죽천 박광전(1526~1597)의 문무겸장 인문학으로도 유명하다.
퇴계 이황은 당대 학문의 거두 조광조, 양응정, 홍섬 등에게서 배우고도 자신에게 또 배우러 온 아들 뻘 박광전과 토론을 즐기다 보내게 되자 ‘늦게 좋은 친구를 만났으나 이제 작별하는 이 마당에 어찌 한마디 말이 없을 수 있겠는가’ 하면서 시 5수를 지어 주었다. 여기에 ‘주자서절요’ 까지 이별 선물로 받고 돌아온 박광전은 주자서와 비교하며 연구한 문답록을 자신의 ‘죽천집’(목판)에 남겼다.
죽천은 산앙정 등에서 학문에 정진한 이후 진사시에 합격, 왕자 사부로 임명돼 광해군을 가르쳤다. 광해군은 나중에 죽천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낸다.
광해군이 잘 성장하는 것을 보고난 이후 함열(익산)현감으로 부임한다. 박광전은 동헌에 ‘시민여상’(視民如傷, 다친 사람을 보살피듯이 백성을 사랑하고 가엽게 여긴다)이라는 글귀를 내걸고 이를 실천했다고 전해진다.
낙향해 학문에 매진하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좌의병에 가담, 남원, 진주, 성주, 의령 전투 등에서 공을 세웠다. 그는 광해군에게 민생안정·군량확보를 건의하는 시무책을 제시했으며, 정유재란이 일어난 1597년 의병장이 돼 화순 동복 전투에서 승리한뒤 전쟁이 끝나기전 문무겸장의 불꽃 같은 생을 마감했다. 용산서원, 화산재, 죽천정, 산앙정 등 진원박씨 장계파 종가의 유적에서는 인문학의 거두로서, 충절과 의리를 가진 선비로서 박광전을 칭송하는 후배 문인의 글들이 넘친다.
병자호란에는 박광전의 손자인 16세 박춘수(1590~1641)가 동생 박춘장, 사촌 박춘호, 아들 박진형(1611~1672)과 함께 안방준이 이끄는 의병 창의에 참여했다. 구한말에는 후손 박태승이 동학 접주로 활약하고, 박문용이 만주 봉천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종가는 선현의 문집과 유산을 보존하고 절의정신의 가통을 계승하기 위해 용산서원을 중건하고, 의병기념관을 건립해 보성을 빛낸 777명의 영웅들의 족적을 보존했다.
진원박씨는 고려 대장군을 지낸 박진문을 시조로 삼는다. 11세손인 박홍원, 박계원, 박윤원 3형제 대에서 각각 장종파, 장중파, 장계파로 분파했다. 박광전은 박진문의 14세손이다.
함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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