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부장은 문서를 볼 때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는 버릇이 있다. 카톡 메시지를 남길 때도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니, 거의 직업병이다.
그런 X부장 밑에서 일하는 Y차장은 하루하루가 죽을 맛이다. 특히 X부장이 정색을 하고 물어볼 때면 혈압이 최고조에 달한다. 크게 숨을 쉬고 X부장의 전화를 받는 버릇이 생겼을 정도다.
X부장이 아침부터 달력을 뒤적이더니 “‘단고기’를 아냐”고 물었다. 환단고기는 들어봤어도, 단고기는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 인간이 또 어디서 이상한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군.’ 괜히 아는 척했다가는 한 소리 들을 것 같아 Y차장은 얼른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X부장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기다렸다는 눈빛이다. 평소엔 흐리멍덩하지만 본인이 잘 알거나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땐 좀 밝아진다. X부장의 이야기는 금세 20년 전 베이징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중국 베이징에 해당화랭면식당이라고 있었지. 음....” 옛 생각에 잠긴 그는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20년 전 이야긴데, 거기 단고기 맛이 일품이었어. 어찌나 맛있던지 사흘 연속 방문했었지. 하하.” X부장이 말한 단고기는 ‘개고기’의 북한 말이었다. X부장은 북경에서 맛본 고기 맛을 떠올리며 “얼마나 맛있었으면 ‘단고기’라고 이름 붙였을까”라고 말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그의 단고기 사랑은 베이징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매우 깊었다고 한다.
하지만 X부장에게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것은 5년전 여름이다. 세종대로 사거리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위에 외국인 여성들이 ‘개고기 먹지 말자’는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고 한다. 믿기 어렵지만 X부장은 단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애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X부장은 “찜통더위에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한국까지 찾아와 활동하는 외국인들을 응원하고 싶어 ‘엄지 척’을 날렸는데, 개고기를 먹을 수는 없지 않냐”고 말했다.
Y차장은 X부장의 설명 앞에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에서는 다른 생각이 올라오고 있었다.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을 거야. 여름에 한 마리 정도는 먹어줘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좋아했는데....’ Y차장은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고,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피케팅을 하고 있는 영국 여성들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 그렇지, 외모에 넘어 간 것이 확실해.’ 하지만 며칠 뒤 Y차장은 Z사원으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최근에 X부장이 동물보호단체 카라(KARA)가 광화문광장에서 ‘개식용 완전 종식’ 대책 수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는데 그 모습을 카톡 프로필 사진에 올렸다는 얘기였다. X부장의 프사 인사말에는 ‘모든 생명은 고귀하다. 우리집 덕구도’라는 말도 적혀 있었다. 아울러 Y차장은 법무부가 이달 중에 ‘모든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는 선언 조항을 담은 민법개정안을 입법 예고할 예정이라는 소식도 접했다. 이렇게 되면 압류 시 반려동물 강제 집행이 금지될 수 있으며, 로드킬과 같은 충돌 사고가 발생할 경우 구조 의무도 부과될 여지가 생기게 된다고 한다.
일주일 뒤면 중복(中伏)이다. X부장은 “복날은 보신탕을 먹는 날이 아니라 개가 사람에 엎드리듯이 더위에 엎드릴 정도로 더운 날”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pdj2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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