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에 드러난 다자무역체제 허약성
자국 산업 안정 위해 비관세 장벽 활용
“양자·다자 FTA로 새 무역질서 논의를”
코로나19 팬데믹은 글로벌 가치사슬의 허약성을 드러냈다. 주요 무역국들은 환경과 노동 등을 명분으로 내세워 자유무역체제를 지키기보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자무역체제의 근간이 흔들린 만큼 양자 무역협정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올해 들어 미국과 유럽, 중국 등 주요 무역국가들은 각기 다른 국가로부터의 수입 물품에 대한 의존성을 줄이고 자국 내 제조업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고율의 관세를 매기는 ‘관세장벽’을 세웠다면 최근 이들 국가가 활용하는 무역 규제 조치는 탄소배출권이나 공공 부문 우선 구매, 환경 및 노동규제 등 ‘비관세장벽’이 대부분이다.
▶코로나19가 드러낸 세계 분업화의 허상=코로나19 확산 초기 발생한 와이어링하네스 공급 부족 사태를 겪은 세계 각국은 경쟁적으로 자국 제조업 챙기기에 나섰다. 락다운으로 중국에서 생산되는 와이어링 하네스가 부족해지자 글로벌 완성차들의 생산까지 중단되는 문제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어진 차량용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의 부족 사태는 이 같은 위기 의식에 기름을 부었다. 전기차 시장이 급속도로 확대됨에도 반도체와 배터리 부족으로 생산 차질을 빚으며 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유럽에서는 2025년까지 역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전기차에 들어갈 고용량 배터리를 자급화하기로 했다. 폭스바겐 등 유럽 완성차 브랜드도 이에 호응해 속속 유럽 지역 내에 자체 배터리 공장을 짓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나아가 연방정부가 연간 6000억달러가 넘는 물품을 조달할 때 미국산 제품을 우선하도록 하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정책을 내세웠다.
▶무역장벽 된 환경·노동 가치=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신흥국의 값싼 물품에 장벽을 세우는 명분으로 친환경과 노동자 보호 등 보편적 가치를 내세우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달 유럽연합(EU)이 도입한 탄소국경조정매커니즘(CABM)이다. EU는 향후 각국 기업에 공급망 전체의 환경·인권보호 현황을 실사하는 의무를 부여하는 제도도 시행할 예정이다.
EU 내 기업에 온실가스 배출 규제 부담을 지워도 중국이나 인도 등 규제가 느슨한 다른 국가에서 물품을 수입하거나 공장을 이전해 규제를 회피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미국 민주당도 최근 유사한 내용의 탄소국경세 제도를 ‘공정전환경쟁법’이라는 이름으로 발의했다. 아울러 미국은 미국·멕시코·캐나다무역협정(USMCA)를 개정하면서 노동 관련 규제도 강화했다. 자동차의 경우 협정에 따라 특혜관세를 적용받으려면 특정 부품의 45%를 시간당 16달러 이상의 임금을 지급받는 노동자가 생산하도록 했다.
이천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미국은 USMCA 수준의 환경 및 노동 관련 의무를 새로 맺는 자유무역협정(FTA)에 반영하려고 할 것이며 한국에도 기존 한·미FTA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 외에 미·중패권 경쟁도 무역장벽 확대를 부추기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기술 굴기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혁신경쟁법(USICA)’을 통과시켜 인권 탄압 등 미국의 가치에 반하는 중국 기업을 제재하고 미국의 자금이 중국 국유기업이나 정부 및 인민해방군에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았다. 중국은 이에 맞서 대중국 제재에 동참한 외국기업에 대한 보복조치를 담은 ‘반외국제재법’을 도입했다. 원호연 기자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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