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쉿(bullshit)’은 흔히 ‘쓸모없’는’‘엉터리’‘쓰레기’등의 의미를 지닌 비속어다. 그런데 ‘불쉿 잡’은 뭘까?
데이비드 그레이버 런던정경대 교수는 2013년 8월17일자 스트라이커지에 ‘불쉿 직업이라는 현상에 대하여’라는 글을 게재헸다. 도발적인 글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외부인이 보기에는 별로 하는 일이 없어보이는 일자리들이 있다. 가령 사모펀드 CEO, 인사 관리 컨설턴트, 보험설계사, 커뮤니케이션 코디네이터, 광고 조사원, 금융 전략가, 기업 법무팀 변호사 등이다. 주15시간이면 충분한 일을 50시간씩 잡아먹는다. 이 직업 종사자들은 대체로 높은 보수를 받으면서 따분해하고, 일에서 의미를 못찾겠다며 투덜댄다. 소위 불쉿 잡이다. 이들 직업이 사라진다고 해서 세상이 나빠지거나 불편한 건 아니다.
반면 간호사, 쓰레기 수거원, 정비공, 항만노동자가 없어지면 당장 재앙이 일어난다. 그런데 이런 의미있는 일,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불쉿 잡을 가진 사람들과는 비교도 안되게 보수가 낮다. 여기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
데이비드의 이 글은 폭발적 반향을 일으켰다.‘ 당신의 직업은 의미있는 기여를 하는가’란 설문조사도 각국에서 이어졌다. 네덜란드에선 40퍼센트가 자신의 업무가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뚜렷한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이 주장을 확장하고 체계화한 단행본 ‘불쉿 잡’(민음사)에는 전형적인 불쉿 잡 사례로 공무원이 등장한다.
물류회사 직원 B는 500킬로미터 떨어진 한 군대에 차를 렌트해 일을 처리하러 간다. 군인A가 두 칸 떨어진 방으로 사무실을 옮기면서 컴퓨터를 가져가야 하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A는 자신의 컴퓨터를 바로 가져가지 못한다. 군대는 IT작업을 처리해주는 어느 하청업체와 계약이 돼 있다. IT하청업체는 서류를 받고 다시 물류를 처리해주는 하청업체에 전달하고, 물류회사의 사무직원은 이를 담당 직원인 B에게 보낸다. B는 도착해 서식을 작성한 뒤 컴퓨터 전원을 빼내 상자에 넣고 다른 물류 직원을 시켜 새 사무실로 옮기고, 다시 컴퓨터 전원을 연결한다. 두 사람이 여섯시간 내지 열 시간 운전해 열대여섯짜리 서류를 작성하고 오는데 세금 400유로가 소모된다. 담당직원은 그 일을 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스스로 납득하지 못한다. 한마디로 너무나 무의미하고 불필요해서 그 직업의 종사자조차도 그것이 존재해야 할 정당한 이유를 찾지 못하는 직업형태가 불쉿 직업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불쉿 직업의 다섯가지 유형을 제시한다. 상사나 관리자를 중요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제복 입은 하인’, 타인을 공격하는 요소가 있으며 누군가가 채용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직업인 ‘깡패’, 문제를 덕트테이프 같은 임시방편으로 때우는 업무만 하는 ‘임시땜질꾼’, 실제 목표를 이루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서류를 양산하는 ‘형식적 서류 작성 직원’, 그리고 이런 불쉿 업무를 만들어 배분하는 중간 관리자 ‘작업반장’ 등이다.
그렇다면 이런 직업들이 왜 자꾸 증가하고 업무량도 늘어나는 걸까?
저자는 금융자본주의의 성장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농업, 제조업, 서비스업에서 금융, 보험, 부동산으로 경제가 이동하며 90년대 이미 전체 경제의 절반 이상으로 성장, 불쉿 직업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실질적인 상품 제작과 유통, 유지 관리보다 자원이 시스템에 따라 이리 저리 보내지는 일로 유지되는 현 자본주의 정치경제적 구조에선 더 많은 부가 경영계층에 쏠리게 된다.
저자는 타인을 이롭게 하는 직업일수록 왜 보수는 적어지는지, 일이 갈수록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 여겨져 일의 노예가 돼 버린 현실을 지적한다.
저자의 대안은 생계와 노동의 분리, 노동과 시간의 가치를 임금의 값으로만 환산하지 않을 수 있는 대안, 또 자유의 실천으로서의 기본소득에 있다.
'월가를 점령하라'를 비롯, 세계 정의 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해온 행동파 지식인의 통찰이 새롭다.
이윤미 기자
불쉿 잡/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김병화 옮김/민음사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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