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로 예정된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사들의 전쟁’이 치열하다. 과거 대선주자들의 배우자가 ‘내조’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모든 일정을 소화할 수 없는 후보를 대신해 직접 현장을 방문해 지지를 호소하는 등 적극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1, 2위 경쟁이 치열한 여당의 경우, 후보 배우자가 지역 경선 때마다 유세 경쟁을 펼치고 있고, 본격적인 경선을 앞둔 야권에서도 후보 배우자들의 물밑 선거전이 시작되는 모양새다.
현재까지 지역 순회 경선에서 과반이 넘는 득표율을 유지 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후보 캠프에서는 “후보보다도 배우자가 더 바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 후보의 부인인 김혜경 씨는 최근까지 호남과 강원 등을 매일 방문하며 후보 대신 ‘지역 스킨쉽’에 열심이다.
지난 8일과 9일 광주를 찾았던 김 씨는 하루 동안에만 ‘광주YWCA 회장단 면담’과 ‘전남 여성작가협회 간담회’,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참배’ 일정을 소화했고, 이튿날에는 시민단체 간담회와 민주당 광주시당 실버위원장단 방문, 지역아동센터 대표단 간담회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이 후보 캠프 관계자는 “망월동 민주열사묘역 참배 직후에는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 여사를 예방해 후보 대신 직접 고견을 전해듣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라며 “이 후보의 경우에는 현직 경기지사라는 신분 탓에 지역 일정 소화가 어려운데, 이를 김 씨가 모두 대신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12일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강원 지역 합동연설회를 앞두고선 김 씨가 직접 강원 지역 일정을 소화하기도 했다.
이재명 후보를 추격 중인 이낙연 후보 캠프에서도 부인 김숙희 씨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일찍이 ‘여니숙희’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운영하며 자신의 대선 지원 활동을 알려왔던 그는 지난 6일 강원과 동해, 태백, 삼척 정선을 모두 방문하며 여성, 권리당원을 중심으로 지지 호소에 나섰다. 앞선 지역 경선에서 이낙연 후보가 큰 격차로 패배하자 ‘구원투수’ 역할을 자처하며 현장 일정을 늘리기도 했다.
김 씨는 이낙연 후보보다도 한 발 앞서 지역 일정을 소화 중이다. 지난 2일에는 경북 영주와 상주, 영덕, 의성을 방문했고, 지난 3일에는 대구를 방문했다. 여의도 일정 등을 소화하느라 지난 6일에서야 대구 경북 지역을 방문한 후보 본인보다도 빠른 행보다.
두 후보 배우자의 물밑 경쟁은 추석 연휴 기간 동안 경선 최대 격전지인 호남에서 다시 재현될 전망이다. 이미 지난 6월부터 광주 대안시장에서 봉사활동을 해온 김숙희 씨는 추석 연휴 기간 동안 ‘호남 특보’ 역할에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낙연 후보 캠프 관계자는 “여사가 참모진에게도 직접 연락하며 격려 메시지를 보내는 등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맞서 호남 지역 방문을 계속하고 있는 김혜경 씨도 오는 18일 추석 연휴 동안 광주·전남 지역에서 이재명 후보와 함께 지역 행보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이재명 후보 캠프 관계자는 “광주와 전남은 캠프 내부에서도 과반을 장담하기 힘들 정도로 열세인 곳”이라며 “본선 경쟁력을 강조하는 동시에 후보와 배우자가 지역에서 스킨쉽을 넓히며 바닥 민심 확보에 집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여권 내 ‘대선주자 빅3’ 구도를 깨며 경선 득표율 3위를 기록한 추미애 후보 역시 배우자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호남 지역에서 ‘예상 밖의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 추 후보의 배우자인 서성환 변호사는 전북 정읍시에서 오랫동안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했었고, 시댁 역시 정읍에 있다. 전북에서 강세를 보였던 정세균 후보의 사퇴로 추 후보가 ‘호남의 며느리’ 이미지를 앞세워 추가 득표에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특히 서 변호사는 추 후보가 정치적 위기를 맞을 때마다 버팀목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예비경선 과정에서는 추 후보가 직접 “어느 날 양말에 구멍이 나 ‘양말도 못 사줘서 너무 미안하다’고 했더니 ‘이런 것에 왜 신경을 쓰느냐’고 저를 꾸짖었다”라며 “공공성과 공적인 책임을 너무 강조하는 사람이다.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가족 논란은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경선 일정을 앞두고 있는 야권 후보들의 배우자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 19대 대선에서 후원회장으로 배우자인 이순삼 씨를 선택했던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는 지난달 예비후보 등록 직후에도 “후원회장은 5년 전 대선 출마 때와 똑같이 나를 평생 물심양면으로 뒷받침해준 아내 이순삼으로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 씨는 홍 후보를 가장 가까이서 지원하며 주요 행사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다. 지난 2일에는 포항에서 한국척수장애인협회 경북협회 포항시지회를 찾아 “대통령이야말로 국민의 가장 밑바닥 삶까지 겪어본 사람이 해야 그 아픔을 공감할 수 있고, 국민을 위한 정책이 무엇인지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라며 홍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홍 의원 측 관계자는 “아내인 이 여사가 홍 후보의 정치 인생 시작부터 그를 도와왔다”라며 “홍 후보 역시 이 여사의 지원을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교적 대선 행보가 늦었던 최재형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의 배우자인 이소연 씨는 지난 달 유튜브 채널 ‘최재형TV’에 출연해 “항상 아껴주고 도움을 받았는데, 이제는 내가 열심히 도와드리겠다”며 눈물을 글썽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최 후보의 가족들이 설 모임에서 애국가를 4절까지 제창했다는 일화가 논란이 되자, 이례적으로 이 씨는 ‘며느리 성명서’를 발표하며 적극 해명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 씨는 당시 성명서에서 “저희는 나라가 잘된다면 애국가를 천 번 만 번이라도 부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출마 전부터 각종 의혹에 시달렸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는 자신을 향한 여야 상대 후보들의 공세가 이어지자 비교적 조용히 활동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김 씨의 박사 논문 표절 의혹을 두고 국민대학교와 교육부가 신경전을 벌이면서 김 씨의 공개 활동은 더 부담스러워진 상황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대선주자의 경우,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처럼 배우자가 더 주목을 받을 경우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윤 후보 역시 같은 우려를 하고 있을 것”이라며 “김 씨를 둘러싼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기 때문에 당분간 공개 활동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유오상 기자
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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