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공간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땅과 바다를 두고 끊임없는 다툼을 벌여왔다. 이 때문에 인류가 벌인 전쟁의 상당 부분은 정치・종교적 이유와 함께 경제적 욕구에서 비롯됐다. 더 많은 땅과 바다를 확보하면 더 많은 생산이 가능하고, 이는 더 많은 인구와 더 큰 권력으로 이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한자 문화권에서 쓰이는 경제란 말은 19세기 일본에서 서구의 이코노믹스(economics)를 번역한 말로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줄임말이다. 중국 진나라 때 포박자(抱樸子)에 나온 ‘세상을 경륜한다(經世)’는 말과, 서경(書經)에 나오는 ‘백성을 구제한다(濟民)’란 말을 절묘하게 줄인 결과다. 번역자가 경제와 정치가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음을 꿰뚫어 본 셈이다.
지정학은 국제관계 연구에서 지리가 국가이익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말 그대로 정치적 목적의 공간해석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지경학(Geo-economics)이 부상하고 있다. 무역과 투자의 관점에서 지리를 다루는데서 루마니아 출신의 전략전문가 루트왁이 1990년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기고한 사설 ‘지정학에서 지경학으로: 분쟁의 논리, 상업의 논법’을 통해 지정학과 대비되는 용어로 사용하면서 색다른 의미를 갖게 됐다. 루트왁은 군사적 수단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와 경제적 수단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본질적으로 동일하며, 국가 간의 경쟁이 지정학적 경쟁에서 지경학적 경쟁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30년간 금융인으로 지내온 저자는 은퇴 후인 2017년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왜 남북관계는 수십 년 동안 온탕과 냉탕을 오갈 수밖에 없는가?’란 화두를 품게 된 저자는 이후 지경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과거 70년 이상 지정학적인 틀에 갇혀 남북관계를 바라보고 관계를 유지, 발전시키려고 하니 한계가 있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분단된 영토를 하나로 합치는 지정학적 접근은 두 개의 주권체가 주도권 경쟁을 피할 수 없지만, 경제적 통합을 우선하는 지경학적 접근은 새로운 남북관계 수립이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저자는 현재의 남북교착 상황을 타개하고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기 위해 ‘경제통합평화론’에 기반한 남북경제통합특별구를 제안한다. 남북한의 경제통합을 위한 실험구역이다.
저자는 북한 핵문제와 관련, 2005년 발생한 ‘방코델타아시아 사건’ 연구를 통해 미국의 세컨더리보이콧 금융제재 효과의 발생 매커니즘을 분석, 호평을 받았다.
홍길용 기자/kyhong@heraldcorp.com
지경학의 이론과 실제/임종식 지음/바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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