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관련된 의례는 죽은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산 사람을 위한 절차다. 죽은 사람을 원 없이 잊게 해주는 과정이 장례고, 산 사람을 일상에 복귀시키기 위한 문화적·사회적 장치가 장례의식이다. 모두 애도의 과정이다. 애도에는 조문을 가거나 조화를 보내거나 죽은이를 회상하는 방법이 있다. 향년 90세로 일기를 마친 그에 대해 대한민국은 ‘애도 없는 애도’를 택했다. 망자에 으레 뒤따르는 슬픔과 위로 대신, 차가운 침묵 혹은 신랄한 논평으로 그를 보내기로 한 것이다. 심판이자 응징이기도 한 그 선택은, 한국에 두 번 다시 쿠데타·독재·학살이 있어선 안 된다는 국민공감대 위에 서 있다. 1980년 5월, 광주를 유혈로 낭자하게 했던 그 사람 이야기다.
23일 서울 모처에 마련된 그의 빈소는 썰렁했다. 빈소를 찾은 현역 국회의원은 윤상현 의원이 유일했다. 윤 의원은 그의 전 사위다. 조화도 썰렁했다. 간혹 그와 함께 쿠데타를 도모했던 측근들과 백담사 주지 정도만 그의 빈소를 찾았다. 그가 만든 민주정의당(민정당)의 후신 정당 대표와 대선 후보조차 그의 빈소를 찾지 않았다. 당장 대선을 앞둔 상황이라 ‘표가 안 된다’는 계산 때문이기도 하겠고, 그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는 점을 그 정당이 유연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간 그의 친구와도 비교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가장으로 치러졌고, 장례식장에는 정치·재계 인사들이 조문했다. 조문객들은 산을 이뤘고 취재진들 역시 북적였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의 사망에 대해 사전에 모의라도 했던 것처럼 정치권 인사들이 일제히 조문을 가지 않기로 했다는 점이다. 정치권은 표심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가 가는 길은 대한민국이 내린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종결됐음을 의미한다. 그는 그의 친구와 어떻게 달랐나. 그는 쿠데타를 통해 집권했고, 그의 친구는 국민 선거로 당선됐다. 그는 줄잡아 수백명을 죽이고서도 ‘왜 나만 갖고 그래’라고 호통을 쳤던 반면, 그의 친구는 ‘아들’을 통해서라도 용서를 구했다. 그는 아무런 유언을 남기지 않은 반면, 그의 친구는 “제 과오들에 깊은 용서 바란다”고 썼다. 대한민국에 최소한의 정의가 작동한다면 전 재산이 ‘29만원 뿐’이어서 1000억에 육박하는 추징금을 내지 않고 가버린 이가 가는 길은, 추징금을 모두 내고 반성했던 이가 가는길과는 달라야 한다고 믿는다.
오늘의 사건은 내일의 역사다. 그의 죽음은 반면 교사다. 대한민국에 군사정권은 두번 다시 없어야 하고,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대통령은 없어야 하며, 국민의 뜻에 반하는 지도자가 대한민국의 수장이 돼선 안 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대선을 100여일 앞둔 시점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그의 죽음을 대하는 정치권의 태도는 국민들의 태도다. 광주 법정에 들어서며 ‘이거 왜 이래’ 역정을 냈던 그의 뻔뻔함에 대한민국은 ‘애도 없는 애도’로 그를 응징했다. 가해자의 반성과 사과 없이는 피해자의 용서와 화해도 없다.
hong@heraldcorp.com
![“교과서 미래엔 AI가 있다”…‘AI 공장’된 미래엔 세종공장 [그 회사 어때?]](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2/news-p.v1.20260821.9213ff47283443e4aeec745e2b971c31_T1.jpg?type=h&h=240)
![일본서 사라진 인플레 ‘명목 앵커’…물가·엔화에 중요한 이유 [츠토무 와타나베]](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1/news-p.v1.20260816.209013b3297d4c92ab32710d529f3877_T1.jpg?type=h&h=240)
![프롬프트의 신법 [‘오늘’에 대한 우리 이야기]](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1/news-p.v1.20260901.203c531a96884d4da174595cad521d59_T1.png?type=h&h=2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