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에 힘주는 삼성전자

부서 ‘경험’ 강조 새롭게 명명

CX 전문가 안용일 부사장 승진

“디자인 지향해야 제품혁신 가능성”

논문에서 디자인 지배구조 주목

“애플 잡아보자”...삼성 ‘이 사람’ 눈길

삼성전자가 연말 정기인사 직후 ‘경험(eXperience)’ 을 뜻하는 ‘X’를 전면에 내세우며 조직명 쇄신에 힘주고 있다. ‘뉴 삼성’을 향한 대대적인 탈바꿈 일환이다. 이 중에서도 최근 인사를 통해 ‘경험’ 철학을 이끌 인물에 관심이 쏠린다. 삼성전자 내 고객경험(CX) 전문가로 꼽히는 안용일(사진) 신임 부사장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전자는 임원 인사를 통해 CX·MDE(멀티 디바이스 경험) 사무국장을 맡아 왔던 안용일 디자인경영센터 UX(사용자경험)센터장을 부사장으로 승진시키고, CX·MDE센터를 새롭게 설립했다. 삼성전자는 “중장기 CX 로드맵을 수립하고 전사 차원의 사용자경험(UX)의 일관성을 강화하는 등 고객 경험 혁신을 주도했다”고 안 부사장의 승진 이유를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내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정보기술(IT)·가전 박람회 ‘CES 2022’에서 MDE 등 혁신 전략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CX는 상품 구매 전 마케팅부터 구입과 이후 고객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객 경험을 뜻한다. MDE는 사물 인터넷과 인공지능 등을 바탕으로 TV, 스마트폰 등 다양한 전자기기를 서로 연계해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MDE는 삼성전자가 CES에서 강조하고 있는 키워드 중 하나로 한종희 디바이스경험(DX) 부회장 등이 최근까지도 정기 회의를 열고 집중하는 주제인 것으로 알려졌다.

CX 전문가인 그가 올해 6월 제출한 서강대 박사학위 논문 ‘제품기술 불확실성과 과제 비정형성이 디자인 지배구조와 제품혁신성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보면, CX 전문가로서 어떤 기조에서 조직의 비전을 그리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그가 이 논문에서 말하는 디자인이란 단순한 외관상 예쁜 형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경험과 편익을 증대시키는 과정에서 논의되는 것들을 뜻한다.

안 부사장은 논문을 통해 디자인 기능을 회사 바깥인 시장에서 구하는 게 적절한지, 내부에 조직화하는 것이 적절한지 등을 따지는 지배구조 관점의 선행 연구가 기존에 없었다는 것을 문제로 지적했다. 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윌리엄슨 교수의 거래비용이론(거래비용을 최소화하는 관점에서 기업과 시장이 경계가 형성된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신제품 혁신을 이끌 수 있는 디자인 조직의 구조를 분석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상품의 개발 초기단계부터 제조나 마케팅 분야에 디자인 조직이 포괄적으로 참여하고 논의를 주도할수록, 마케팅 영역과 연구개발(R&D) 영역의 협업을 촉진시켜 신제품 혁신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도출했다.

디자인 조직을 마케팅 등 특정 부서에 하부 조직으로 두기보다, 경영층(사업부장)에 가깝게 두거나 리더의 직급을 높이는 등 방식으로 독립성을 확보해야 디자인 지향 조직을 설립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이에 업계에서는 디자인 조직을 중심으로 한 ‘경험’의 강조가 삼성전자 내에서 꾸준히 이어질 가능성을 제기한다. 삼성전자는 최근 무선사업부를 모바일경험(MX)사업부로, 세트 부문을 디바이스경험(DX) 부문으로 명칭을 바꿔 이 같은 변화가 더욱 짙어질 전망이다.

MDE를 가장 성공적으로 실현했다고 평가받는 애플과의 경쟁에서 삼성이 우위를 점할지도 관심사다. 애플의 운영체제에 익숙해진 고객들이 타 브랜드 제품을 사용하기 않고 태블릿, 스마트폰 등 애플 생태계에 높은 충성도를 보이고 있다. 이를 자사 고객으로 흡수하는 것도 뉴 삼성 과제 중 하나다.

익명을 요구한 마케팅 분야 교수는 “시간이 갈수록 모바일과 가전의 경계가 점차 불분명해져 고객의 경험을 묶어줄 수단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며 “이런 경계가 사라진 고객 경험을 묶어주는 수단으로 디자인의 중요성이 부각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고객 경험이 중요해지면서 부서의 정체성이 더 특화되는 일련의 과정이 삼성전자 조직 변화에도 나타나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지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