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천예선 기자]국제유가가 날개없이 추락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자원 민족주의’가 시험대에 올랐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발 저유가 시대가 본격 개막하면서 러시아의 석유를 무기로 한 ‘민족주의’가 어떤 식으로 발로할지 초미의 관심사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1일자 칼럼에서 “푸틴 대통령이 온건적 권위주의에서 전체주의 통치로 전환하는 것은 경제에 달렸다”고 지적했다.

▶푸틴 ”겨울 온다” 득의양양=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유가 폭락에 따른 러시아 경제 위축 우려에도 불구, 푸틴 대통령은 낙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OPEC의 감산 불발이 결정된 지난달 28일 소치를 방문해 “겨울이 오고 있다”며 “시장은 내년 1분기나 중반께에 다시 균형을 맞출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 에너지 수요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유가하락이 우크라에 간섭을 철회하라는 서방의 요구에 무릎꿇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의지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경제 정치 칼럼니스트 키릴 로고프는 FT칼럼에서 “러시아 경제가 매우 급속도로 악화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푸틴 대통령은 국민의 애국심을 더욱 고취시킬 것이고, 이는 곧 서방과의 대립 심화를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푸틴의 비밀병기 ‘고유가ㆍ애국심’= ‘21세기 차르 푸틴’으로 불리는 푸틴 대통령은 2000년 5월 대통령에 취임해 14년간 실권을 쥐고 있다.

그는 고유가와 애국심이라는 ‘양수겸장‘으로 실력을 행사해왔다. 고유가는 호황기 푸틴의 최대 우군이었고, 애국심은 우크라 사태를 비롯한 지역 갈등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그러나 지난주 OPEC의 감산 합의 무산으로 푸틴 대통령에게는 애국심만 남게 됐다.

지난 28일 북해산 브렌트유는 배럴당 70.02달러를 기록해 6월(105달러)에서 34% 폭락했다.

푸틴 대통령은 집권 이후 석유과 천연가스를 장악하고 금융 분야에서의 역할을 키우면서 권력을 유지해왔다. 이와 더불어 성장한 민족주의 물결은 투자 인센티브를 침해하면서 민간 투자에 필요한 자원을 잠식해갔다.

푸틴 정권 초반 고유가에 춤춘 러시아 경제성장의 결실은 시장을 통해 분배됐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고유가 시기는 사정이 달랐다.

고유가 수혜가 경제 전반에 순조롭게 확산되지 않았고, 2012년과 그 이듬해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섰을 때에도 러시아 경제는 침체에 근접했다. 투자 감소는 비용 상승을 유발했고, 소비 증대의 동력을 꺾었다. 석유 재벌들은 정부에 기부금을 대야 했다.

▶러, ‘자원민족주의’ 악순환=로고프에 따르면, 러시아는 ‘자원 민족주의’의 논리로 굴러가고 있다. 과거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나 베네수엘라의 휴고 차베스 정권과 닮은꼴이다.

2010년대 들어 러시아 공공지출은 이전 평균보다 25%이상 증가했다. 공적보조, 즉 연금과 공무원 임금인상, 군비확충 등에 대부분 쓰였다.

이는 불가피하게 정권 자체를 봉쇄시키면서 서방과의 대립국면을 야기시켰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국외에서의 갈등은 러시아 내부에서 푸틴 장기집권 정당성의 밑천이 됐다. 자국내 탄압의 근거를 만들어주고 정권이 국민을 민족주의 담론으로 몰아갈 수 있는 바탕이 된 것이다.

갈등의 목표와는 상관없이 이제 중요한 것은 갈등 그 자체의 영속성으로 변질됐다. 이같은 방식으로 “희망없는 싸움은 막대한 비용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인 것처럼 착시현상을 일으킨다”고 로고프는 ‘자원 민족주의’의 덫을 설명했다.

▶푸틴의 3가지 딜레마=푸틴 정권의 온건적 권위주의가 전체주의 통치로 전환되는데는 3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대중의 지지 ▷엘리트의 묵인 ▷빠르게 악화되지 않는 경제가 그것이다.

로고프는 “대중의 지지가 푸틴에게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유가하락 이후 푸틴 국정지지율은 지난 6월 85%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이는 오도의 소지가 있다. 물밑에서는 의심의 눈초리가 거세지고 있다. 비록 러시아 내에서의 반(反)서방 감정이 심화하고 있기는 하지만 러시아는 이미 서구화돼 있기 때문이다. 2년 전 모스크바에서 대규모 시위대가 현대화를 요구한 것도 그 방증이다.

둘째, 엘리트들은 푸틴에 대한 대중의 지지에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은 경제다. 서방의 제재와 유가하락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경제는 푸틴 대통령에 가장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때문에 “푸틴 대통령은 서방과의 대치를 고조시킬 것인지, 새로운 경기하강에 긴장을 완화시킬 것인지 망설이고 있다”고 로고프는 지적했다.

그러나 ‘자원 민족주의’의 논리상 반전은 없다. 로고프는 “자국의 천연자원을 손에서 놓을 정권에게 번영은 없다”며 푸틴의 강경노선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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