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화석연료 연소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70%를 차지한다.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은 물론, 수송, 제조, 냉·난방 등 거의 모든 인간 활동이 화석연료에 기댄다. 화석연료를 대신할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으로 꼽히는 이유다.
하지만 재생에너지에 대한 시선이 늘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발전소가 우리 동네에 들어선다고 하면 더욱 그렇다. 재생에너지 발전소 근처 주민들은 소음이나 진동 피해를 호소하거나 생활 터전이 축소되는 문제를 겪는다.
그렇다고 주민 갈등 때문에 기후위기 대응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계속 확장하면서도 주민이 겪을 불편과 불만을 최소화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이같은 고민 끝에, 주민들을 발전 사업의 주축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에 크라우드 펀딩 모델을 도입한 국내 스타트업 ‘루트에너지’가 대표적이다. 펀딩에 참여한 주민들은 발전 사업의 이익을 나눠 받는 것은 물론, 사업에 관여한 다른 누구보다 먼저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지구를 위한 투자’에 참여했다는 뿌듯함은 동네에 입소문으로 퍼지며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루트에너지의 창업자인 윤태환 대표를 직접 만나 주민 참여형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이 지닌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루트에너지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있나요?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핵심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것이고, 온실가스를 줄이려면 화석 연료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해야 한다고 봐요. 근데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장벽이 있습니다. 주민 수용성, 기술력, 경제성이죠. 이 중에 기술력과 경제성은 시간이 지나가면 해결될 문제예요. 하지만 주민 수용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어려워질 겁니다. 통상 발전소는 민가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설치하려고 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그 다음 발전소는 어쩔 수 없이 이전 발전소보다는 민가와 가까운 곳에 세워질 수밖에 없겠죠. 사업자와 주민 간 갈등이 점점 더 심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죠.
재생에너지 시장이 성장할수록 사업자와 주민 간 갈등을 해결하는 일이 중요해질 거라고 봐요. 기술력 있고 돈이 충분해도 주민과의 갈등 때문에 사업을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거든요. 주민 수용성을 해결하는 솔루션은 재생에너지 시장의 성장 속도를 끌어올릴 겁니다. 저희가 그 일을 해보려고 해요.”
-주민 수용성은 어떻게 끌어올릴 수 있을까요?
“주민들이 해당 지역 에너지에 대한 주권을 갖고 있어야 해요. 주민이 직접 본인 돈을 투자해 안정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 거기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주민들이 에너지에 대해 주권을 갖게 되면 그때부턴 단순히 발전소를 수용하는 단계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소음도 많지 않고, 돈도 꼬박꼬박 잘 들어오던데’ 하며 적극적으로 다른 주민들에게 자랑하는 현상이 생기는 거죠.”
-주민들이 에너지의 주권을 갖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조금 더 설명한다면?
“기존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의 구조를 뜯어 보면 사업자와 주민 간 정보 격차가 크고, 주민들에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어요. 외지인들이 사업을 하겠다고 마을에 들어와서는, 주민 동의받고 보상금 얼마 떼어주면 끝이었어요. 사업은 20년간 진행되지만, 정작 주민은 사업을 시작할 때 외에는 늘 소외돼 있는 거죠.
하지만 저희 플랫폼을 통해 사업이 진행되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가장 먼저 주민들에게 주어져요. 특히, 주민들의 참여는 지분투자자가 아니라 선순위 채권 투자자로서 이뤄지는데요. 이는 곧 이해관계자들이 발전 사업의 수익을 나눠 가져갈 때, 국가에 세금을 내고 남은 돈 중에선 가장 먼저 자기 몫을 확보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사업자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이익 정산 순위에서 뒤로 밀려나지만, 사업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주민 수용성 문제를 해결하고 사업 기간을 단축할 수 있으니 ‘윈윈’이죠.
기존의 정보 불균형 문제는, 주민들이 궁금해 하는 내용을 취합해 전부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어요. 주민들이 직접 사업 내용은 물론 공학적 특징까지 지인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죠. 분기마다 주민들에게 수익이 정산되는데, 그 때마다 최근의 환경이나 기후 이슈들에 대한 정보를 업데이트해 드리는 등 꾸준히 소통하고 있고요.
굳이 저희같은 플랫폼을 끼지 않아도, 사업자가 직접 주민들과 자주 만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물어보실 수도 있는데요. 사업자들은 엔지니어링이나 금융 조달에만 전문화 돼있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 임직원 30여명이 주민 수용성 하나만 바라보고 뛸 때와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을 겁니다.”
-수용성이 높아졌음을 보여줄 수 있는 사례가 있나요?
“보통 해당 지역에서 바람이 잘 부는 곳, 햇빛이 잘 드는 곳은 정해져 있어요. 그 중 한 곳에서 주민 참여형 사업이 성공하고 입소문이 나면, 조건이 비슷한 다른 지역에서는 사업이 훨씬 수월하게 진행됩니다. 실제 저희가 진행했던 강원도 태백 가덕산 풍력발전소 사업을 참고할 만해요. 가덕산에서의 첫 사업은 주민 동의를 100% 받는 데 26개월이 걸렸는데, 두 번째 사업은 단 4개월밖에 안 걸렸어요. 주민들이 사업을 신뢰하기 시작한 거죠.
동일 지역 내 주민 참여형으로 성공을 거둔 사례가 세 건 이상 쌓이고, 그런 지역이 늘어나면, 재생에너지 발전소에 대한 ‘핌피(PIMFY, Please In My Front Yard)’ 현상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시장은 더 빨리 커지겠죠. 지금 루트에너지는 전국 25군데 지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데, 각 지역에 재생에너지 확산을 위한 깃발을 꼽고 있다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루트에너지의 사업 성과가 궁금합니다. 경쟁 상황은 어떤가요?
“현재 저희가 심사한 투자 상품을 통해 펀딩이 이뤄진 금액은 약 500억원입니다. 상품 건수로는 약 270건, 발전소 개수로는 약 110개 정도죠. 현재 저희와 계약한, 하지만 아직 허가 단계를 밟고 있는 사업장까지 모두 고려하면, 앞으로 약 4200억원의 가량의 추가 펀딩이 가능할 것 같아요.
경쟁사 모니터링은 사실 잘 하고 있지 않아요. 저희를 포함해 세 곳 정도가 재생에너지 크라우드펀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듯한데, 실제로 주민 참여형 사업에 방점을 찍은 것은 저희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실제 공공기관의 입찰에서도 레퍼런스나 전문성, 자격 요건 등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받아 왔습니다.”
-주민 참여형 재생에너지 사업으로 창업을 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언제 떠올렸나요? 약력이 궁금해요.
“대학 졸업 후 환경 컨설팅펌에서 일했었는데, 당시 주말을 이용해 프로보노(전문직의 재능기부) 활동을 했던 게 저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어요. 사회적 기업들이 사업 계획 세우고 창업 경진대회를 준비하는 걸 무료로 도와주면서,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사회적 경제 생태계’라는 걸 그때 처음 접했죠.
그러다 회사를 퇴사하고 덴마크로 풍력에너지공학 석사 유학을 갔는데, 재생에너지 사업을 주민 참여형으로 성공적으로 키울 수 있다는 게 보였어요. 우리나라에선 아직 볼 수 없던 모습이었고, 그래서 직접 그 아이템으로 사회적 경제 생태계에 뛰어보고 싶어졌어요.
그렇게 대학원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2013년 말, 바로 창업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실패를 많이 했어요. 재생에너지와 관련된 아이템을 계속 시도했는데, 아직 시장 인식이 따라주지 않아서, 또는 스타트업으로선 감당하기 힘들 만큼 너무 많은 품이 들어서, 또는 외부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서 실패했죠. 그때의 교훈들을 발판 삼아 보완해 내놓은 게 지금의 서비스입니다.”
-현재 투자 유치 현황이 궁금합니다.
“2018년 시드 투자와 2020년의 프리A 라운드 투자까지 약 26억원을 투자받았어요. 시드 투자는 라이트하우스컴바인인베스트가 해줬고, 프리A 라운드에는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 등이 참여했죠. 그리고 지금 시리즈A 라운드 투자 유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약 65억원 정도 투자 확약을 받았고 최대 100억원까지 늘어날 것 같은데요. 산업은행이라는 든든한 우군을 새로 얻게 됐다는 점, 그리고 시드 투자자였던 라이트하우스를 비롯해 여러 기존 투자자들이 추가 투자를 검토해주고 있다는 점이 의미가 깊은 것 같아요.
2018년 라이트하우스가 저희 회사에 투자할 때 기업가치가 약 50억원이었는데요. 이번 라운드를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면 약 5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 같습니다.”
-사업 확장 계획은?
“재생에너지 산업이 넘어야 할 장벽이 크게 주민 수용성, 기술력, 경제성 이 세 가지가 있다고 말씀드렸었죠. 가장 어려운 주민 수용성 측면에서 성공 사례를 많이 만들어 가고 있다 보니, 여기에 기술력과 경제성 부분까지 함께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려고 해요.
또, 주민 참여형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 외에도 일반인들이 재생에너지 시장 확대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을 발굴하고 있습니다. 전기차 충전 사업 등 저탄소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대출에 대한 이자 수익을 얻는 상품이에요. 이런 상품들을 꾸준히 늘려 나가면서 루트에너지를 ‘디지털 기후 금융 플랫폼’으로 성장시키고자 합니다.
이 외에도 기업들이 사용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화 하는 ‘RE100’ 캠페인에 동참할 수 있도록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미 세계 1위 OTT 플랫폼인 N사와 JYP엔터테인먼트 등에 컨설팅을 수행했습니다. JYP의 경우 ‘이 음반에 수록된 곡은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해 녹음됐습니다’라는 문구를 앨범 자켓에 표기할 수 있을 거예요.”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10만명이 하나의 어젠다를 갖고 동일한 행동을 하면 하나의 사회적 규범이 될 수 있다고 해요. 텀블러 갖고 다니는 게 하나의 문화가 된 것 처럼요. 독일에선 전 국민의 10%인 800만명이 재생에너지에 투자해서 이익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2만~3만명 수준에 그쳐요. 이 숫자가 10만명을 넘어 500만명으로 늘어나면 어떤 세상이 만들어질까요. 그 과정에 기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