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두 작가 제주 포도 뮤지엄 전시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의 아내로
결혼이민 떠난 1000명의 어린 신부
두려움·절망에 대한 공감·위로 건내
사진 신부. 우편으로 온 사진만 보고 결혼한다 해서 ‘사진 신부’라고 불린다. 1910년대의 일이다. 열여덟, 열아홉의 소녀들은 사진 한 장에 의지해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로갔다. 과일이 땅에 굴러다니고 돈을 쓸어담을 수 있는 곳이라는 설명과 듬직한 신랑이 있는 곳이라는 달콤한 말에 넘어갔다는 건 반은 맞고 반은 틀렸을 것이다. 가족도 친구도 지인도 없는 그 땅에 간다는 것이 고국과의 단절임을 모르지 않았으리라. 두렵고 무섭지만, 새로운 길을 택한 그들은 다른 의미의 신여성이었을지 모른다.
사진, 설치,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넘나들며 우리사회의 단면을 다루는 작가 정연두(53)는 이번엔 ‘이주’를 다룬다. 매개체는 사탕수수다. 제국주의의 대표적 작물이자 인간의 탐욕으로 자주 은유되는 설탕을 만들어내는 사탕수수는 한국인의 이주와도 연관이 깊다. 한국 최초의 미국이민은 1902년 하와이 호놀룰루다.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로 101명의 한국인이 도착했다. 18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재배된 사탕수수농장은 값싼 인건비를 유지하기 위해 세계 전역에서 노동자를 맞이했다. 가장 먼저 사탕수수농장에 발 디딘건 중국인(1852년)이었고 이후 이들의 이민이 중지된 후에는 일본인(1885년)이 뒤를 이었다. 한국인은 이들의 대용노동자였다.
1905년 일본이 미국으로 이민을 중단하기 전까지 7226명의 한국인이 하와이로 이주했다. 이중 84%는 20대 남성이었고 9%가 여성, 7%는 어린이였다. 결혼적령기의 여성이 부족하자 1910년부터 한국에서 신부를 구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사진신부’다. 1924년 미국 이민법이 한인 이민을 금지하기 전까지 약 1000명의 신부가 하와이로 유입됐다. 정연두 작가는 한국민의 이민을 찾아보다 한 장의 사진을 만나게 된다. 11명의 어린 신부가 곱게 단장하고 찍은 사진. 11명의 사진 신부였다.
기록으로만 남은 120년 전의 역사는 글자로만 살아있다. “너무 거리가 멀어 상상하기 어려웠다”는 작가는 공감을 느낄수 있는 행위를 고민했다. 그리고 안식년을 틈타 제주에서 사탕수수 농사를 시작했다. 아무리 따뜻한 제주라지만 사탕수수가 자라기엔 역부족이다. 비닐하우스를 치고, 사탕수수 모종 50개를 심었다. 초보 농부로 자고 일어나서 물주고, 김 매고, 살펴보며 애지중지하며 키웠지만 말라 죽기 일쑤였다. 도시 사람이 이상한 식물을 키운다고 생각한 수십년 베테랑 농부 어르신들이 던져주는 조언을 따라하며 사탕수수를 키우는 사이, 애월고등학교 11명 학생들과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사진신부로 이 땅을 떠나야 했던 소녀들과 비슷한 나이인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다.
작가는 이들에게 가족, 결혼, 떠남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120년 전, 사진 신부들이 느꼈을 감정선이 워크숍을 촬영한 영상에 그대로 담겼다. 18세 소녀들은 깔깔 웃기도, 때로는 울컥하기도 하면서 그들의 생각을 말한다. “저는 결혼은 모르겠고, 어른이 되고 싶어요”, “무서웠을것 같아요. 외롭고.. (제가) 엄마를 막 찾는건 아닌데 학교에서 여행을 갔는데 거기 가니까 엄마가 너무 보고싶더라고요” 두려움과 희망을 동시에 품고 새로운 땅에 내렸지만 사진 신부들 앞에 펼쳐진 건 생전 처음 본 식물 밭이었을 것이다. 잔 가시가 많아 조금만 일을 해도 손이 금방 헤지는, 그리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플랜테이션농장. 당시 사진신부와 남편의 평균 나이차는 14살. 한인 부부간 높은 이혼율과 부인들이 일찍 과부가 되는 현상은 한인사회에서도 문제였다고 한다.
정연두 작가는 사탕수수가 만들어내는 설탕으로 이 사진 신부를 제작·소환한다. 직접 설탕공예를 배워 제작한 설탕 인형이다. 사람이 실제로 먹을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파프리카 즙을 넣어 피부색을 만드는 등 천연색소를 활용했다. 약간은 빛이 바랜듯한 설탕 인형은 관객을 순식간에 과거로 데려간다. 농사와 워크숍, 설탕 인형으로 이어지는 작품들은 120년의 시간의 차이를 지우고, 결혼 이주를 동시대 일처럼 살려낸다. 이들이 겪었을 외로움과 괴로움, 복잡다단한 감정까지도.
이주에 대한 관심은 이후 작품에도 계속 될 예정이다. 작가는 제주도 월령리에서 자생하는 백년초를 눈여겨 보고 있다. 멕시코 선인장의 일종인 백년초는 쿠로시오 난류를 타고 제주 해안, 대만의 일부 지역에서 자라고 있다. 멕시코도 한인 이민의 역사가 깊다. 마찬가지로 노동자로 이주한 이들이다. 인간의 이주와 자연의 이동, 양태는 비슷하지만 근원은 다른 두 움직임은 어떤 교차점을 만들어 낼지 기대된다. ‘사진 신부’는 제주 포도 뮤지엄에서 내년 7월 3일까지 만날 수 있다.
이한빛 기자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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