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인선 때마다 나오는 ‘서오남’이라는 용어가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서울대 출신 50대 남성’을 줄인 말이다. 선출되는 대통령(행정부)과 국회의원(입법부)은 여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수결이 지배하는 영역이다. 하지만 선출되지 않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다수의 횡포를 견제하고 소수자를 보호하는 것을 사명으로 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이 바라보는 세상은 다를 수밖에 없다. 최고 법원을 구성할 때 여성 비중을 더 높여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고, 점점 그렇게 될 것이라고 본다.
다만 ‘비(非)서울대’ ‘비(非)50대’라는 기준이 합리적인 것인가는 따져볼 문제다.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이 되려면 법조 경력이 15년 이상이라야 한다. 서른에 법조인이 되더라도 이 요건을 채우면 최소한 40대 중반이 돼야 한다. 과연 45세가 보는 세상과 50세가 보는 세상이 크게 차이가 날까. 비서울대라는 학벌을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다음으로 많은 법조인을 배출하는 곳은 고려대다. 고려대도 일반인의 눈높이에선 충분히 ‘엘리트’ 범주에 포함되는 학벌인데 ‘비서울대’로 묶는 것도 이상한 현상이다. 과연 서울대 나온 법조인과, 고려대 출신 법조인이 보는 세상은 얼마나 차이가 클까.
2023년은 윤석열 정부 사법지형이 바뀌는 해다. 가장 주목받는 자리는 대법원장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오는 9월 임기가 만료된다. 그보다 앞서 조재연 대법관과 박정화 대법관이 7월에 교체될 예정이다. 헌법재판소도 이선애 헌법재판관이 3월이 임기가 만료되고 이석태 재판관은 4월 정년이 차서 물러난다. 유남석 소장은 11월에 임기가 끝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40대, 부산대 출신 이미선 부장판사를 헌법재판관에 지명했을 때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비주류 화천 이발사의 딸’이라고 했다. 현직 부장판사에, 배우자는 대형 로펌 변호사로 50억원대 자산가라면 충분히 사회에서 주류라고 평가할 수 있다. 부산대도 지역의 명문이다. 이미선 재판관의 전임자는 서기석 재판관이었다. 전형적인 ‘서오남’ 엘리트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낙태죄 위헌 결정과 양심적 병역 거부 헌법불합치 결정을 주도하는 업적을 남겼다. 막상 표면적 요건을 모두 갖춘 이미선 재판관이 취임 이후 소수자를 위하거나 사회 정책적 방향을 제시하는 결정을 내렸는지 의문이다.
행정, 입법권력에 대한 사법통제 모델을 만든 나라는 미국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이후 케탄지 브라운 잭슨 판사를 연방대법관으로 지명했다.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 연방대법관이다.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 흑인 출신이라는 점은 성별 못지않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잭슨은 50대, 하버드 출신의 연방항소법원 판사 출신으로, 전형적인 ‘엘리트’다.
과연 엘리트는 나쁜가. 그렇지 않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나 헌법재판관 평의에서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하려면 다른 대법관이나 재판관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만한 실력을 갖춰야 한다. 미 연방대법관 9명 중 8명은 하버드와 예일 출신이 양분하고 있다. 40대, 비하버드 출신을 임명하라는 요구도 없다. 오히려 연방대법관은 임기도 없이 종신직이다. 표면적 조건이 아니라 내실을 따져 골라야 한다.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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