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근 판사 ‘재판의 실패, 어떻게 할 것인가’ 기고

‘악성 미제’ 사건 증가…“대책 수립했는지 의문”

2017년 이후 민사 미제 늘고 재판 속도 늘어져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헤럴드DB]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헤럴드DB]

[헤럴드경제=유동현 기자] 현직 판사가 김명수 대법원장 부임 후 심각해진 ‘재판 지연’ 현상을 근거로 사법행정 실패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현직 판사가 대법원장을 비판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형근 특허법원 고법판사는 최근 법조 전문지인 법률신문에 ‘재판의 실패,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기고문을 게재했다. 이 판사는 김 대법원장이 취임한 2017년 이후 민사합의 ‘사건 처리율 저하’ 경향성이 고착됐지만 “최종 행정사법권자는 법원의 재판 현황을 정확히 알았는지, 그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했는지, 그 대책은 수립했는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최종 사법행정권자란 표현을 통해 에둘러 김 대법원장을 겨냥했다.

이 판사는 법원 통계를 인용해 민사합의 사건이 2016년 3만4160건에서 2021년 4만7720건으로 1.39배 늘었으나, 2년 이상 오래된 ‘악성 미제’는 같은 기간 2355건에서 5113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급기야 지난해는 사상 처음으로 미제분포지수가 플러스(+)에서 마이너스(-)로 전환됐다고도 했다. 이 판사는 “미제분포지수 악화는 업무 과중의 문제가 아니라 법관의 직업윤리와 사법행정권자의 사건관리 문제”라고 분석했다. 미제분포지수는 미제사건 현황을 나타내는 수치로 장기 미제사건이 적체될수록 지수가 낮아진다.

민사합의 사건 처리기간은 2017년 294일에서 ▷2018년 297일 ▷2019년 297일 ▷2020년 336일 ▷2021년 369일로 해마다 증가했다. 2017년에 비해 지난해 처리 기간이 약 25% 늘었다. 2017년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 기능을 축소하고 ‘좋은 재판’을 내걸며 취임한 해다. 그는 “좋은 재판은 실패했다. 실패의 정도는 알려진 것보다 심각하다”며 “조금이나마 개선된 상태에서 사법부를 인계해야 할 임기 마지막 해까지 과거 사법부의 관행을 탓하거나 미래 사법부의 제도에 관해 의견을 제출할 만큼 사법부의 상황이 한가하지 않다”고 했다.

법원 내부에선 김 대법원장을 겨냥한 기고문을 두고 이례적 현상이란 평가다. 이 판사가 과거 행정처 민사정책심의관 근무 경력을 갖춘 사건 관리 전문가로서 지적에 나섰다고도 본다. 전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행정처 사법등기국장을 겸임한 만큼 사실상 ‘양승태 사람’으로 김 대법원장을 비판한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한 판사는 “70년간 이어졌던 사법행정 정책이 김명수 대법원장 부임 후 바뀌었다. 가령 과거엔 (사건처리 관리를 위해) 판사 근무 평정 시 미제 사건을 얼마나 처리했는지가 반영됐지만 지금은 하지 않는다”며 “미제 현상 공론화를 한 것이 선의라고 보이지만, 표현에 사법행정권자라는 지칭이 있듯 김 대법원장의 정책이 실패했다는 지적”이라 평가했다.

또 다른 판사는 “현 대법원장에 대한 비판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봐야한다”면서도 “인사가 발표난 후에 공개해 김 대법원장의 법원장 후보추천제 등 개별정책에 시비를 거는 것처럼 보일 우려를 없앤 거 같다”고 했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양승태 대법원장 때 행정처에 계셨던 분으로 사실 김 대법원장 라인은 아니다. 이 부장판사와 같은 인식을 갖는 과거 행정처 분들이 상당히 많다”며 “올해 임기가 끝나는 대법원장의 정책이 실패했다는 지적으로 법관 사회에서는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dingd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