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사이드갤러리 하태임 작가 개인전

깊어진 그리움의 기억·생동감 담아내

하태임, Un Passage No.221064, 200 X 250cm, Acrylic on Canvas, 2022
하태임, Un Passage No.221064, 200 X 250cm, Acrylic on Canvas, 2022

녹색은 하태임 작가에게 의미가 남다른 색깔이다.

“긴 투병생활로 지쳐있던 어느 봄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분의 휠체어를 밀며 산책하다가 ‘태임아, 무슨 색이 제일 좋으냐’는 질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연두색(yellow green)’이라고 말했다. 당신은 ‘진녹색(deep green)’라고 했다”고 작가는 회고한다. 1989년 5월, 평생의 스승인 아버지 하인두 화백과 나눈 대화다.

그때부터 녹색은 부녀가 가장 애정하는 색이 됐다. 비록 녹색이라는 단어는 너무 한정적이고, 자신이 생각하는 녹색과 그가 생각하는 녹색에는 수많은 경험과 기억의 차이가 중첩되어 있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하인두 화백은 같은 해 11월 유명을 달리했다.

하태임, Un Passage No.221059, 130 x 162cm, Acrylic on Canvas, 2022 [아트사이드갤러리 제공]
하태임, Un Passage No.221059, 130 x 162cm, Acrylic on Canvas, 2022 [아트사이드갤러리 제공]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열리는 하태임 작가의 개인전은 아버지와의 추억이 듬뿍 담긴 ‘녹색’으로 가득 채웠다. 프랑스 유학 시절부터 ‘진정한 소통은 비가시적인 것’이라는 생각으로 색채를 소통의 창구로 받아들였던 작가는 컬러밴드 작업에 천착해 왔다.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연두색과 진녹색의 다양한 스펙트럼은 아버지와 딸이, 스승과 제자가 나누는 대화인 듯 보인다. 수 십 년이 지나도록 아끼고 아껴두었다 이제야 꺼낸 알토란 같은 이야기들이다.

바니시로 여러 차례 마감한 캔버스 위에 자리잡은 컬러밴드는 더욱 투명해지고 깊어졌다. 녹색과 연두가 나란히, 혹은 교차하며 자아내는 앙상블은 겨우내 웅크렸던 새싹이 마침내 움튼, 산과 들녘을 온갖 종류의 녹색으로 물들이는 봄 날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전시를 기획한 이혜미 아트사이드갤러리 대표는 “이번 전시의 녹색은 깊어진 그리움의 기억과 생동감이 넘치는 기운을 담고 있다”며 “보는 이들에게 내면의 울림을 준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기존과 다른, 새로운 컬러밴드가 나타났다. 그간 명상과도 가까운 몸의 움직임을 사용해 일관적 형식으로 율동적 컬러밴드를 보였던 작가는 신작을 준비하며 경쾌한 터치를 더했다. 파워풀한 색 덩어리는 일견 거칠게도 느껴지나, 유연하고 역동적으로 캔버스를 변주한다.

이 대표는 “컬러밴드가 구현해내는 궤도와 질서의 공간에서 새로운 터치들이 우연의 효과와 만나 과감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며 “기존의 조형 언어와 새로운 변화의 만남은 하태임 만의 독보적인 색채와 뚜렷한 작품 세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한편 지하 전시장에서는 수 십개 알루미늄 막대와 섬유 밴드로 이뤄진 설치 작업이 있다. 캔버스 안에서 활동하던 컬러밴드들이 실생활로 튀어나온 느낌이다. 갇혀있던 공간감이 실제로 구현된 듯 해 관객들에게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전시는 4월 1일까지.

이한빛 기자


vick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