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간 세계 문물이 오가던 ‘V’자형 해상실크로드의 변곡점 종교·역사·음식의 멜팅포트
외국인에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화합 뛰어넘는 존중의 정신 감동
여기서 두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믿기 어려운 건축물리학이다. 정약용 선생이 수원성을 짓기 위해 거중기를 발명하기 900년전,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이집트 피라미드에 쓰인 벽돌 보다 큰, 길이 10m짜리 대형암석을 수십m 높이까지 올려 프람바난을 축조했던 것이다.
인도네시아 지도층과 통치권자가 보여준 종교 간 관용도 놀랍다. 무슬림 국가로서의 명맥이 수백년 이어지고 국민 87%가 무슬림이지만, 이 힌두교 사원과 보로부두르 불탑(佛塔)을 최고 문화재로서 대우하고 장기간 보존 복원을 추진했다.
심지어 나라를 상징하는 표장(標章)에 인구 7%에 불과한 힌두교의 상징물을 쓰고 있다. 비슈누(유지 보호의 신), 브라만(창조의 신), 시바(파괴의 신) 등 3대 힌두교 신 중에서 비슈누의 육체에 해당하는 ‘가루다’(인간의 모습을 한 독수리)를 국장(國章)으로 삼고 있다.
힌두교의 시바는 다른 종교에서는 볼수 없는 ‘창조적 파괴’의 덕목을 가르친다. 돌이키기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때 ‘과감하게 다시 시작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힌두의 상징물을 나라의 표장으로 쓴 무슬림 지도자들의 대범한 관용도 ‘관념의 창조적 파괴’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인도네시아어로 종교는 아가마(Agama), 관습은 아닷(Adat)이다. 그들은 “아가마는 바다로부터, 아닷은 산으로부터 왔다”고 한다. 믿고 따르는 모든 것의 원천을 바다와 산으로 여기는 자세에서도 그들의 순수하면서도 ‘통 큰’ 마음을 느낄수 있다.
▶외국인을 감동시키는 그들의 우정=신성한 성지에서도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외국인과 친구하기’는 이어졌다. 섭씨 30도가 넘는 날씨에도 머리에 무슬림 머플러를 맨 30대 아줌마 7~8명이 한국에서 온 50대 아저씨들에게 ‘함께 사진찍자’고 하니 황송스럽다. 중학생 아이들도 배운지 얼마되지 않은 영어로 “반갑다”고 인사하며 ‘강남스타일’ 말춤 한자락을 선보이며 친분을 과시한다.
일본이 인도네시아를 잠시 점령했을 때 강제징집-징용 당한 한국인들에게 악역을 많이 맡겼고, 현지인들이 일본을 비난하면 “일본이 아니라 한국인들이 그랬다”고 변명하는 바람에 해방직후 잠시나마 한국인들에 대한 인상은 좋지 않았다고 마대씨는 전한다. 하지만 그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금방 훌훌 털고 친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인도네시아인들의 쿨한 모습이 다문화 평화 공존의 첫 출발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요그야카르타 시내에 있는 슐탄왕궁에서도, ‘솔로’라고 불리는 수라카르타의 망꾸너가란 궁전에서도,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친절은 감동스럽게 이어졌다. 망꾸너가란 궁에서는 초등학생 서너명에게 “나 한국에서 왔는데, 같이 찍을래?”라고 했다가, 체험학습을 온 어린이 수십명 모두에게 둘러싸이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인니(印尼)) 무슬림지도자의 포용과 나눔=권력을 과시하지 않고 국민과 편하게 마주할 것 같이 화려하지 않으며 수수하게 만들어진 슐탄왕궁에서는 때마침 궁중의례 연주곡 공연이 있었다.
전통타악기는 우리의 것을 닮았다. 편경이나 편종을 닮은 악기도 눈에 띄었고, ‘공’은 ‘징’을 닮았다. 우리나라 ‘징’이 첼로라면 징 보다 3배가량 큰 ‘공’은 묵직한 소리를 내는 더블베이스라 하겠다. 그릇모양의 타악기는 우리의 꽹가리 노릇을 했다.
누가 먼저랄 것이 없다. 문화는 이처럼 돌고돌거나 사람 있는 곳이면 어디든 동시다발적으로 비슷한 것이 창출된다. 일부 서방 국가들이 정치적으로 악용한 서구문화 우월주의는 나쁜 마음으로 만들어낸 것이지, 태초에 더 잘난 나라란 없다.
서구인들은 태평양을 횡단하는 항해기술을 자기네가 10세기 이후에 가장 먼저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미 기원전부터 인도네시아 동쪽 폴리네시아와 남미 원주민들이 고도의 항해술로 태평양을 오가며 동남아시아와 남미를 잇고 있었음을 ‘콘티키(Kon-Tiki)호’가 입증한 바 있다.
무슬림의 생활신조는 나눔과 절제이다. 이익을 예금자와 나누는 이슬람은행은 이곳 무슬림에게 친구같은 존재이다. 슐탄 왕궁의 내관들은 모두 은퇴한 자원봉사자들이다. 후손들을 여럿 둔 건강한 몸들이다. 그들은 통치자로부터 베품과 나눔을 받은 만큼, 한 푼도 받지 않고 문화유산의 수호를 위해 청소하고 토론하며 실천한다.
▶엄청난 잠재력…인프라 투자는 시급=독립투쟁의 상대국인 네덜란드 문화와 자바 문화가 섞인 망꾸너가란 궁전에서도 인도네시아의 포용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는 시민과 관광객을 위한 전통춤 나눔 강습이 매일 이뤄진다.
한국에 1만7000개 지역, 200여 인종이 있었다면 얼마나 많이 싸우고 할퀴었을까. 한국 취재진은 인도네시아에서 화합과 용서를 넘는 상호 존중과 포용 정신을 똑똑히 목격했다. 이곳에 오는 비행기안에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했던 나의 오만함도 부끄럽다. 내가 배우고 얻은 것이 너무 많으니까.
먼저 다가가는 ‘순수의 열정’, 포용과 나눔은 불가사의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만들고, 평화로운 다문화 사회를 유지 발전시키는 큰 원동력인 것 같다. 매년 6~7%를 기록하는 고도 경제성장률로 미뤄, 도로ㆍ항만ㆍ교육ㆍ의료 인프라를 위한 투자와 지원이 이뤄진다면 인도네시아는 머지않아 아시아의 ’빅 드래곤’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여행의 3대 요소는 장소, 사람, 음식이다. 놀라운 문화 유산과 복원의 집념, 언제든 베풀고 감싸안으려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정(情), 건강과 맛을 함께 생각하는 웰빙 레시피와 지구촌 음식문화의 백화점 등 인도네시아는 모든 것을 갖추었다.
못생긴 한국 아저씨의 옷 소매에 스스럼없이 매달리던 인도네시아 청소년과 활달하던 무슬림 아줌마들, 버스를 기다리며 휴대기기를 만지던 히잡 쓴 샐러리 우먼들, 애교와 지혜가 넘치던 디아와 하나, 동네 형님 같았던 마대씨, 그들이 몹시 보고싶다. 이 그리움은 내 마음 한켠을 오래도록 아프게 할 것 같다. “아빠 까바르?(Apa kabar:안녕하시지요) 친구들!”
함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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