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슬기 기자] 한잔에 1000원짜리 동동주부터 중고 런닝머신까지 ‘없는 것 빼고 있는 것은 다 있는’ 도심 속 만물상.
서울 지하철 1호선과 6호선이 만나는 동묘 앞 황학동 만물시장이다. 청년과 노인, 먹을 것과 입을 것, 아날로그와 디지털, 새것과 낡은 것이 공존하는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당신의 가벼운 주머니는 마치 다른 나라의 환율을 적용받은 듯 두둑해진다. 모든 제품의 가격이 1000원, 2000원을 기준으로 매겨지는 이 도심 속 ‘만물 멀티숍’에서는 도통 쓸모가 없어 보이던 1000원짜리 지폐 한 장이 모든 것이 가능한 ‘VIP 카드’로 둔갑한다.
우선 황학동 만물시장의 입구를 떡하니 차지하고 앉아 오고가는 이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시계와 선글라스를 판매하는 좌판이다. 이곳에서는 브랜드를 막론하고 단 돈 2000원만 내면 바늘이 제자리에 멈춰선 시계에 새 숨을 불어넣을 수 있다. 조명이 반짝이는 팬시숍에서 수만 원은 족히 받을 것 같은 패션 선글라스도 2000원이면 족하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은 중고 시계를 찬찬히 살펴보다 보면 한 때는 자동차 한 대값을 호가했을 법한 진짜 명품 시계도 수만 원 대의 가격표를 달고 튀어나온다. 백화점 명품관을 휩쓸고 다니는 ‘요우커’가 부럽지 않은 순간이다. 발걸음을 옮겨 골목 초입에 위치한 음악사에는 ‘형사 공필두’, ‘달마야 서울가자’ 등 한때 박스오피스를 호령했던 옛 영화의 DVD들이 한 장에 1000원에 팔리고 있다. ‘겨울연가’ 같은 한류 드라마의 배경음악을 담은 카세트테이프도 1000원이다. 따스한 아날로그 음색을 자랑하는 LP는 산처럼 쌓인 음반 사이에서도 ‘4장에 만원’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명품의 자태를 뽐낸다. 세월이 달아준 프리미엄이다.
사주 비법서부터 영농지도서, 소설, 한국어 교본까지 주제와 출판연도를 불문하고 헌 책을 1000~3000원에 파는 음악사 옆 헌책방을 지나다 보면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황학동 명물시장을 찾는 이라면 누구나 그냥 지나갈 수 없는 토스트ㆍ동동주 노점이다. 누가 외국에서만 와인이나 위스키를 잔술로 마신다고 했던가. 야채가 풍성하게 들어간 계란지단을 부쳐넣은 1500원짜리 토스트에는 이내 한 잔에 1000원을 받는 동동주가 따라붙는다. 얼큰하게 취하지 않더라도 배가 부르고 술기운이 도니 추위가 물러난다.
한 때의 휴식에 기운을 차린 행인들은 다시 기운을 내 동묘 앞 골목 골목에 들어찬 만물시장으로 쇼핑을 떠난다. 누군가는 2000원짜리 두툼한 목도리와 발열버선, 1000원짜리 앙고라 장갑으로 겨울맞이를 준비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염가, 전 제품 만원’ 바닥에 쌓인 옷 무더기를 이리저리 들추는데 여념이 없다. 황학동 만물시장에서는 그렇게 2000원의 가치가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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