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에서 예상을 뒤엎고 극우성향 경제학자 하비에르 밀레이 자유전진당 대표가 당선됐다. 19일(현지시각) 개표결과, 밀레이는 55%가 넘는 득표율로 44%대에 그친 여당 후보 세르히오 마사 경제장관을 여유 있게 따돌리고 집권에 성공했다. 페로니즘(Peronism) 정권의 무리한 선심정책이 불러온 극심한 경제난에 지친 아르헨티나 국민이 밀레이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마사 후보는 마지막까지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보너스를 지급하는 등 돈을 풀었지만 도도한 민심의 흐름을 이기지 못했다.

남미 최강국 아르헨티나 경제가 망가질 대로 망가진 것은 후안 페론 전 대통령 이후 수십년간 이어진 인기영합적 정책이 화근이었다. 그동안 9차례 국가부도를 겪었고,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20번이나 받았을 정도다. 그런데도 2019년 페로니즘을 앞세워 당선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현 대통령은 각종 복지 혜택과 보조금을 남발하면서 4년간 국가부채를 962억달러나 늘려놓았다. 모자라는 돈은 중앙은행이 마구 찍어내 충당했으니 경제가 온전할 수가 없었다.

실제 그 결과는 참담했다. 아르헨티나 통화인 페소 가치는 그사이 90%나 하락했고, 연간 물가상승율은 지난달 기준 143%까지 올랐다. 현 정부 집권기간을 통틀어서 무려 844%에 달했다. 그나마 정부가 주요 생필품 가격을 강제로 통제하지 않았다면 1000%를 상회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기준금리는 연 133%나 된다. 오죽하면 국민 사이에선 ‘오늘이 가장 싸다’는 말이 회자되고 월급을 받으면 생필품 사재기에 나섰다고 한다.

중앙은행 폐지, 공용화폐 달러화 채택, 총기 자유화 등을 공약으로 내세운 밀레이의 공약도 정상은 아니다. 당선 후에는 핵심 국영기업을 모두 민영화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급진적 정책들은 또 다른 후유증을 가져올 가능성이 매우 크다. 결국 아르헨티나 국민은 최악을 버리고 차악을 고른 셈이다. 현지 매체들이 일제히 “페로니즘에 지친 아르헨티나 국민이 선택한 대안”이라고 이번 선거 결과를 평가한 것은 이런 까닭일 것이다.

무엇보다 아르헨티나 선거결과가 던지는 시사점을 우리 정치권은 잘 새겨야 할 것이다. 당장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의 퍼주기 선심경쟁이 점입가경이다. 노인 임플란트 지원 확대(2→4개)부터 예비타당성조사 없는 대구~광주 달빛고속전철사업까지 크고 작은 선심성 정책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돈으로 표를 사게 되면 당장 효과를 볼 수는 있지만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 결과를 아르헨티나 상황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