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이 공금으로 고가의 스포츠 의류나 스마트 워치 등 개인 물품을 구매하는 데 썼다가 대거 적발됐다. 이렇게 부적절하게 사용된 세금이 12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20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지자체를 포함한 14개 공공기관의 ‘시설부대비 집행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서 드러난 사실이다. 시설부대비는 안전용품이나 출장 여비 등 사업수행 기본 경비외 추가지급되는 부대비용인데 이걸 빼돌린 것이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조사 범위를 전국 지자체와 모든 공공기관으로 확대해 보면 유사한 사례는 수없이 많을 것이다.

조사 결과를 보면 시설부대비용을 유용한 다양하고 교묘한 수법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한 지자체의 공무원은 현장 감독용 피복비라는 명분으로 유명 스포츠 브랜드 의류와 신발을 구입했다가 적발됐다. 이 공무원은 2년간 이런 수법으로 31차례에 걸쳐 496만원어치를 사들였다고 한다. 또 다른 지자체 공무원은 동료의 안전복을 구매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개인적인 물품을 사들이는데 사용하기도 했다. 허위 거래 명세서를 제출하고 스마트 워치를 구매하거나 식사비 등으로 유용한 경우도 있었다. 그 외에도 업무와 무관한 외유성 해외출장비를 시설부대비에서 지출한 공공기관도 있었다. 겉으로는 ‘안전’ 관리 등을 내세우며 자신의 개인 주머니 채우기에 열을 올린 것이다.

크고 작은 공무원 횡령과 공금 유용 사례는 그동안 많았지만 이번 사안은 그 경우가 다르다. 이들은 안전모와 안전화, 안전작업복 등 현장 안전을 위해 배정된 비용마저 거리낌없이 개인 용품을 구매하는 데 썼다. 공무원들이 이러니 일반 작업 현장에서도 민간 감독관이 안전화를 산다며 골프화를 사는 등 각종 안전 비용을 개인적으로 쓰는 것이 관행이 됐다. 이번 비리는 결국 안전 경시 풍조가 공직사회부터 만연하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가뜩이나 우리 사회 전반의 안전불감증이 퍼지고 있는데 본보기가 돼야 할 공무원이 이 지경이니 툭하면 대형 안전사고가 터지는 것이다. 성수대교 붕괴부터 최근 핼러윈 비극까지 대형 참사의 원인 역시 결국 안전불감증이 아니었던가.

권익위 조사 결과는 결코 유야무야 덮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관련된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에 대해서는 빼돌린 비용 환수는 물론 형사처벌 등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안전 관련 비용까지 눈먼 돈으로 여기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관행을 뿌리 뽑을 수 있다. 아울러 공금의 집행 투명성을 높일 제도적 장치 보완도 더 서둘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