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에 대한 진한 페이소스…이호재 영화감독
빚내 학자금 알바에 목숨거는 현실 좋아서 한 ‘쓸모없는 일’이 영화로
“‘대출하거나 ‘알바’하거나.”
2009년 늦여름의 20대 청춘 4명의 인생을 이호재(27) 감독은 딱 두 가지의 선택지로 설명했다. 학교를 다니기 위해선 은행에서 빚을 내거나 시급 몇 천원에 목매달아야 했다. 한국에서 20대로 산다는 것을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말이 있을까. 당시 20대 초중반이었던 이 감독과 하승엽, 이현학, 김휘 등 영화전공 대학생 4명은 여름 내내 아르바이트(부업)를 뛰었지만, 손에 쥔 돈은 각자 200만원씩뿐이었다.
“다음 학기 등록금도 안 되는 돈이었어요. 빚내서 학교 다닌들, 남들처럼 스펙 쌓으며 취업준비해야겠죠. 다들 영화전공이니까 졸업작품 만들려면 또 돈이 필요하고…. 학교를 마쳐도 영화 하려면 연출부 생활 몇 년 해야 되고, 다들 군입대도 해야 했고. 그래서 남들 다가는 유럽여행이나 하자, 졸업 전에 추억이나 만들자고 했는데 비행기값 제외하니까 남는 게 없더라고요. 그때 떠오른 생각이 어차피 우리 모두 영화 전공이니까 현지에서 숙박업소나 식당의 홍보 영상을 찍어주고 숙식을 해결하자는 것이었죠. ”
지난 11월 28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이 감독을 비롯한 당시 대학생 4명의 1년간에 걸친 유럽 무전여행기를 그렸다. 이들의 목표는 거창했다. 현지에서 숙박업소 홍보 동영상을 찍어주며 경비를 해결하고, 영국에서 ‘비틀스에 버금갈 만한 유망 뮤지션’을 발굴해 뮤직비디오를 만든 뒤, 이 모든 과정을 다큐멘터리영화로 만들어 개봉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노숙과 걸식이 거듭되는 ‘잉여의 나날’이었다.
“‘우린 잉여니까 괜찮아’가 입에 붙어있었죠. 예를 들자면 ‘숙제 안해도 돼, 우린 잉여니까’ ‘성적 나빠도 돼, 우린 잉여니까’ 하는 식으로 말이죠. 실제로 다들 성적도 형편없었어요. 제 경우에도 당시 고민이 많았죠. 극영화를 하고 싶어서 연출 전공을 선택했는데, 생각보다 재능 있고 잘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데뷔하기까지 몇 년을 버틸 수 있을 거라는 엄두도 못 냈죠.”
영화 주인공 4명의 리더 격인 이 감독의 원래 전공은 국제통상학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극장을 들락거리다가 접한 예술영화가 좋아 학교를 그만두고 예술영화전용관 영사실에 취업했다. 그러다가 아예 영화쪽으로 진로를 바꿔 예술전문학교에 입학했고, 그 마저도 1년만 다니고 2009년 유럽여행을 계기로 그만뒀다. 영화를 함께 한 다른 3명도 모두 자퇴서를 내고 유럽행 비행기를 탔다.
“저희는 ‘잉여’죠, 하기 싫은 건 안하고, 하고 싶은 것은 별로 생산적이지 못한 일들이죠. 사회에서 규격화된 것,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요구받는 것을 잘 하지 못하거나 안 하죠. 사회는 저희 같은 존재들을 위해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아요. 그래서 일정한 평균과 기준을 따르지 못하는 저희들을 ‘잉여’라고 하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저희들이 좋아서 했던 ‘쓸모없는 일들’ 때문에 영화도 만들 수 있었어요. 사회가 조금 더 다양한 시선으로 저희 세대를 봐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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