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착한 사람’ 틀에 박힌 인식이 되레 나눔을 부담스럽게 만들어…숨쉬고 잠자듯 자연스러운 나눔, 거창한 사회공헌 아닌 사랑의 실천으로
나눔과 기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연말연시다. 기부 방식이나 형태도 현금ㆍ현물 기부를 너머 재능형 기부, 지식재산권 기부, 매칭펀드형 기부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총기부금도 성장속도가 둔화되긴 했지만 크게 늘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이다.
기부를 늘리기 위해서는 관련법과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기부가 연말에 집중적으로 몰리는 것은 세금공제 때문이기도 하다. 기부연금제나 유상기부 방식도 고려할 만하다. 하지만 기부에 관련된 수치를 증대시키는 것보다 더 시급한 것은 올바른 기부, 나눔문화를 정립하는 일이다.
우리의 기부 참여인구는 선진국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다. 기부는 하는 사람만 계속 한다. 신규 기부자가 적다는 말이다. 기부 진입장벽이 높다는 것은 것은 기부에 대한 기존 인식의 전환을 요구한다.
우리는 기부라는 행위에 지나치게 도덕성을 부여한다. ‘기부하는 사람=착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으로 따지기 때문에 부담스럽다. 기부는 생활이어야 하고,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하는데, 우리는 기부를 하는 사람이나 안 하는 사람이나 모두 눈치를 봐야 한다.
대기업 총수가 개인적으로 기부를 잘 안 하는 것,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억원 이상 개인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이 아닌 것도 기부에 대한 인식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5억원을 기부하고도 공개를 꺼리는 한 연예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연예인이나 스타들이 기부를 하면 칭찬과 격려를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돈 많이 벌었네” “이미지 세탁하냐” “잘난 체 하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골치가 아프니 기부를 망설이게 된다. 이런 시선을 떨칠 수 있어야 기부를 떳떳하게 할 수 있다.
기부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는 가장 큰 힘이다.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부자와 빈자를 낳는다. 부익부빈익빈 현상은 심화된다. 그래서 부자가 가난한 자와 사회적 약자를 돕는 건, 자연스럽고 일상적이어야 한다. 무슨 특별한 도덕적 행위가 아니다.
자본주의가 먼저 발달한 영국 등 서유럽과 미국은 ‘기부’에 힘을 뺐다. 개신교가 큰 역할을 했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역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나타나 있듯이, 초기 자본주의의 핵심은 근검절약과 금욕이었다. 엄청난 ‘짠돌이’ 정신이다. 이윤이 나면 소비와 향략에 쓰는 게 아니라 재투자하고 ‘자선’을 행한다. ‘자선(Charity)’이라는 개념은 기부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만들었다. 주는 사람도 뿌듯함과 마음의 평화를 느끼고, 받는 사람도 비굴하지 않다.
우리도 기부를 도덕이라는 잣대보다는 ‘이웃애’ 정도로 생각하게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혼자 사는 게 아니라 공동체 사회를 산다는 인식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이런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생활 속에서 체험하게 해야 한다. 미국은 어릴 때부터 나눔을 교육과정에서 배우고 체험한다. 기부는 어린 시절 자원봉사에서 시작한다. 중학생은 초등학생을 가르치고, 고등학생은 중학생을, 대학생은 고교생을 가르치고 돌보며 기부의 맛을 경험한다.
우리는 학교에서 자원봉사증명서를 요구하기 때문에 엄마 ‘빽’으로 자원봉사에 참여한다. 그러니 어릴 때 자원봉사에 참여해 기분이 좋아지고, 수혜자가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껴볼 새가 없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등 미국 ‘기부왕’들의 기부는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한 게 아니다.
부(富)를 바라보는 시각도 우리는 너무 ‘가족적’이다. 우리나라는 유산기부가 전체기부액의 0.5%밖에 안 된다. 미국의 8%, 영국의 35%와 크게 차이가 있다. 자신이 번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유산기부를 하루 아침에 늘릴 수는 없다.
우리는 성인군자가 아니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건 예수나 공자 수준이 돼야 할 수 있는 경지다. 기부를 자랑해도 괜찮은 문화를 만들자. 십시일반 소액 기부를 창피하거나 어색하게 여길 필요도 없다.
기부하는 재미를 느끼도록 해 주는 것도 좋다. 처음부터 돈을 내라고 했으면 거부했을 거라고 했던 사람이 수혜자가 변하는 모습을 계속 사진으로 보내주자 관심과 흥미가 생겨 기부에 참가하게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기부의 일상화’는 멀리 있지 않다.
서병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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