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영상 기자]계사년(癸巳年)이 저물어간다. 갑오년(甲午年) 새 희망은 꿈틀거린다. 악몽은 잊는 게 낫다. 지난일은 좋은 것만 기억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은 법이다. 하지만 다 잊어버리면 미래가 없다. 잘못된 것, 잘못한 것은 교훈으로 곱씹어야 한다.

특히 재계가 그렇다. 2013년 경제민주화시대라는 거대한 흐름속에 고전한 재계로선 계사년을 통해 반추할 것이 더 많아 보인다.

일단 대마불사(大馬不死) 공식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교훈을 얻었다. 대우그룹 해체 등 과거 ‘대마도 죽을 수 있다’는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2013년 재계는 ‘튼튼하지 못한 대마는 언제든지 잡힐 수 있다’는 ‘대마가사(大馬可死)’의 시대적 전환점에서 홍역을 톡특히 치렀다.

유동성위기와 신속치 못한 대처로 나락에 빠진 동양그룹과 샐러리맨 신화를 대표했던 STX그룹의 좌초는 그런 현상을 입증했다. 팬택과 중견기업인 웅진그룹의 위기 역시 대표적이다. 올해 막판에 알짜기업인 현대증권마저 매각에 나선 현대그룹의 자구책도 ‘대마가사’를 피하기 위한 뼈를 깎는 특단책이라는 점에서 올한해 재계의 긴장감은 어느때보다도 높았다.

10대그룹 임원은 “대마가 웬만하면 죽겠는냐는 공감대가 과거 재계에선 통용됐던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STX와 동양, 웅진그룹 사태를 겪으며 위험신호가 있는 기업에 대한 자본조달은 어려워졌으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더이상 불가능해지면서 대마 역시 튼튼한 구조로 재장착해야 한다는 것이 새 화두로 등장했다”고 말했다.

갈이천정(渴而穿井ㆍ미리 준비해 두지 않고 일이 닥쳐서야 허둥지둥 덤벼댐) 역시 재계가 향후에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꼽힌다.

2013년은 경제민주화 화두 속에 기업인들이 유독 수난을 당한 한 해로 기억될 만 하다. 과거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겠지만, 투명경영을 요구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 ‘영어의 몸’이 된 총수들이 유난히 많았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이 검찰 수사와 함께 그룹 경영에서 근거리에 있을 수 없는 입장이 됐고, 전경련 회장까지 지냈던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역시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재계 관계자는 “일부 그룹 총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과거 관행적으로 통용됐던 경영방식에서 재빨리 탈출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고 본다”며 “투명한 경영, 공정한 경영, 상생의 경영으로 과거와의 단절에 성공하지 못하면 기업경영이 힘들어지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재계가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올 한해 정치권으로부터 융단폭격을 당했던 경제민주화법 역시 재계가 대응논리를 개발하는 데 미흡했다는 평가다. 유해화학물질법, 통상임금, 신규순환출자 등 재계로선 속앓이를 할 수 밖에 없는 현안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는 크게 냈지만, 정치권 논리의 함정 제시나 절충 내지 새로운 대안을 꺼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기업을 대표하는 재계단체 역시 이와 관련한 아젠다 창출에 부족함을 보이면서 한없이 재계가 밀릴 수 밖에 없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3년 재계는 격화소양(隔靴搔癢ㆍ신을 신은 위로 가려운 데를 긁는다는 뜻으로, 어떤 일의 효과가 없음)의 한해였다는 반성론도 대두된다. 기존 한국 경제 동력의 주축이었던 전차(전자ㆍ자동차) 외에는 새 성장동력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요 그룹을 비롯해 중견기업, 중소기업까지 미래 먹거리를 위해 바이오,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등 신성장동력 창출에 나섰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가 없다는 게 이같은 논리를 대변한다. 최소한 신성장동력에 관한한 새해벽두부터 말만 요란했지 실천적 결과가 별로 없었다는 점에서 갑오년은 대분발이 요구된다는 게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