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재생 해외사례는

그 미술관에 들어서면 오래된 기름냄새가 코를 스친다. 벽에는 검은 기름자국이 여럿 보인다. 화력발전소에서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런던 테이트모던의 새로운 지하전시장 ‘탱크’다. 이 미술관은 지난해 여름 지하 기름탱크를 전시실로 바꿨다. 이름도 ‘더 탱크(the Tanks at the Tate Modern)’로 명명했다. 테이트모던은 개관 초기 200만명이었던 연간 관람객이 500만명으로 늘자 발전용 석유를 보관했던 높이 7m, 지름 30m의 검은 탱크를 세계 최초의 퍼포먼스, 설치, 비디오, 라이브아트 전용관으로 조성했다. 이번 작업도 스위스 건축가 헤르조그 & 드 메롱이 맡았다. 두 사람은 출입구 등만 바꾸며 탱크를 리노베이션했다.

이는 옛 건물을 싸그리 헐어버리고 그 위에 으리으리한 첨단건물을 짓는 우리로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비좁고 낡더라도 역사성을 간직한 건물과 공간을 가급적 살리는 게 최근 세계 예술계의 경향이다. 옛 흔적과 자취야말로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자산임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테이트모던의 기름탱크가 ‘아트탱크’가 되면서 전세계의 내로라하는 미술 관계자와 애호가가 몰려들고 있다. ‘창조산업’의 강자로 부상한 런던을 탱크는 더욱 멋진 도시로 각인시키고 있는 것. 영국 게이츠헤드의 볼틱현대미술관 또한 1950년대 제분소를 개조했다. 인구 20만의 이 작은 도시는 미술관과 밀레니엄브리지로 인해 매년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독일에도 사례가 즐비하다. 베를린의 UFA파브릭, 타클레스, 칼스루에의 ZKM아트센터는 모두 ‘과거’를 품고 있는 문화공간이다. 특히 프랑크푸르트 남쪽 칼스루에에 위치한 ZKM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탄약공장이었던 건물을 복합아트센터로 개조해 관심을 끈다. 감추고 싶은 전쟁의 기억까지 끌어안으며 세계 유일의 미디어·예술센터로 탈바꿈시킨 과단성이 돋보인다.

버려진 공간을 예술시설로 활용해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례는 이 밖에도 부지기수다. 기차역을 개조한 파리 오르세미술관은 역 구조와 자연광을 그대로 살린 가운데 인상파 그림을 내걸어 ‘가장 찾고 싶은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중국 베이징 따산즈의 798예술지구도 옛 군수공장의 낡고 거친 시설을 최대한 활용해 특화를 이루고 있다. 초창기 가난한 미술가가 싼 집세에 이끌려 몰려든 798은 이후 갤러리와 미술관이 속속 들어서며 세계적 예술사이트가 됐다. 무엇보다 수십년간 비바람을 맞으며 퇴색한 공장건물과 각종 군수설비를 가급적 손대지 않고 남겨놓은 게 주효했다. 만약 군수공장의 옛 흔적을 깡그리 없앴다면 798은 지금처럼 각광받지 못했을 것이다.

모스크바에는 옛 버스차고를 활용한 현대미술관<사진>이 화제다. ‘당대 문화를 위한 창고센터’라는 긴 이름의 이 미술관은 러시아 석유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첼시 구단주)의 연인인 주코바가 만들었다. 모델 출신의 문화기획자인 주코바는 이렇다할 현대미술관이 없던 모스크바에 러시아 근대건축물인 버스 차고를 참신한 현대미술을 담는 공간으로 변모시켜 전세계 미술 거물을 불러모으고 있다. 이렇듯 방치된 유휴시설은 첨단건물에선 느낄 수 없는 ‘묘한 아우라’를 뿜어내며 독특한 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해 현대도시를 더욱 매혹적으로 리셋하고 있다. 바야흐로 낡은 것, 흔적이 있는 것이 대접받는 시대다.

이영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