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박영서 특파원]미국이 B-52 전략 폭격기를 동중국해 상공으로 비행시킴으로써 중·일 간 영유권 분쟁에 사실상 개입을 시작했다. 중· 일 간 형성된 대립전선이 중국의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설정을 계기로 이제 G2(주요 2개국) 차원으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동북아 정세가 긴장의 파고 속으로 급속히 빨려들어가고 있다.
▶美 폭격기 투입, 개입시작=미국의 B-52 전략 폭격기 두대가 지난 25일(미국 동부시간) 오후 7시 중국에 사전통보도 하지않은 채 중국이 설정한 방공식별구역을 관통해 비행했다.
B-52 폭격기는 이날 괌에서 이륙해 중국과 일본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동중국해 상공을 비무장 상태로 비행했다.
미국 국방부 대변인실의 스티븐 워런 대령은 “이번 비행은 오래전에 계획된 훈련이었다”면서 “중국 측에 사전에 비행계획을 통보하지 않았고 주파수 등도 등록하지 않았으며 이 구역에 1시간 이내로 머물면서 ‘사고 없이’ 임무를 완수했다”고 강조했다.
오래전부터 계획돼온 정규훈련의 일환이라는게 미국 당국의 설명이지만 전략폭격기 출동이라는 ‘위력과시’를 통해 중국이 설정한 방공식별구역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동북아 역내 패권을 둘러싼 중국과의 경쟁에서 확실한 기선제압을 하겠다는 의도도 깔려있다.
지금까지 미국은 지역안정을 호소하며 중국과 일본의 영토 분쟁에 간섭을 되도록 피해왔다. 그러나 폭격기를 투입함으로써 본격적인 개입을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중국 사회과학원의 한 연구원은 “중국이 댜오위다오를 방공식별구역에 넣은 것을 놓고 미국은 중·일간 영유권 분쟁에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해 현상유지가 깨질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면서 “미국은 중국의 이번 조치가 동북아 지역에서 유지돼왔던 미국 중심의 질서에 대한 도전이자 미국의 아시아 중심전략을 위협하는 것으로 판단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경한 中, 부담은 커=미국 폭격기의 비행에 대해 중국언론들은 보도를 자제하고 있지만 중국 네티즌들은 강경한 입장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미군이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에 침입했다면 중국 역시 일본의 방공식별구별에 들어가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방공식별구역 설정을 놓고 중국 내 여론은 ‘당연한 것을 했다’는 반응이다. 중국측은 일본은 이미 1969년 방공식별구역을 발표했고 이후 범위를 중국쪽으로 꾸준히 넓혀왔으며 저장성 해역에선 불과 100㎞까지 근접했다고 주장한다.
미국, 일본 등 20개국이 이미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하고있고 일부는 중복이 있지만 대부분은 잘 조정되고있다는 것이 중국 측 설명이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이 무효라는 것은 ‘도둑이 도둑을 욕하는 것’이란 반응이다.
물론 이번 파장을 중국이 모를 리가 없다.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건 애초부터 일본뿐 아니라 미국을 직접 겨냥한 포석이 분명하다.
일본언론들은 중국이 1년전부터 이 계획을 차근차근 준비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9월부터 중국매체에 방공식별구역 설정 기사가 다뤄지기 시작했다.
단 중국은 미국의 행동에 대해 특별한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계속해서 미국의 반응을 떠볼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주고받기 식으로 추가적인 대응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중국은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데 이어 항모 랴오닝함을 작전지역을 벗어난 남중국해로 이동시키며 항모전단 훈련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랴오닝함이 영유권 분쟁으로 민감한 지역인 오키나와의 요나구니섬 주변과 미야코해협을 지나야하는 만큼 이는 일본에 군사적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다.
중국은 영유권 문제를 양보할 수 없는 국가이익으로 간주하고 있다. 또한 이 문제는 정권의 안정과도 직결되어 있다. 때문에 강경입장을 고수하며 아직까지 양보할 기미가 없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상황이 악화될 지 모르는 ‘살얼음판’ 국면은 중국에게도 큰 부담이다.
27일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사태의 향배를 좌우할 키는 중국이 쥐고 있다”면서 “이번 사태를 주도한 중국 군부를 다른 세력들이 견제할 수 있을 지의 여부가 사태 향배에 변수가 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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