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묘와 은행나무길

1506년 폐위된 뒤 강화도서 쓸쓸한 죽음…부인 신씨 간청으로 현묘지로 이장

곳곳에 파인 상석에선 권력의 무상함…이끼 낀 묘표선 세월의 흔적이…

600여년 전부터 마을사람들에 생활용수를 공급한 ‘원당샘’서 목마름 해결하고…

빌딩 숲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서울엔 아직도 ‘걷고 싶은 길’이 많다. 일제강점기와 6ㆍ25 전쟁, 압축적 성장으로 잔존하는 역사가 많지 않다지만 한 발짝 벗어난 서울엔 지금도 역사와 이야기가 흐른다.

‘폭군’하면 단연 떠오르는 왕이 있다. 왕이란 칭호도 붙지 못한 왕, 조선의 10대왕 연산군이다. 도봉산과 북한산이 맞닿아 있는 도봉구 오봉 자락 언덕 위가 그의 거처다. ‘연산군 묘와 은행나무길(연산군 묘→방학동 은행나무→원당샘→양로재→회산군 묘와 덕수 이씨 부녀자 묘→정의공주와 부마 양효공 안맹담 내외 묘, 약 1시간30분 소요)’을 걸으며 연산군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 “역사는 폭군이라는데, 그도 많이 아팠겠구나”=지하철 1호선 창동역에서 내려 1144번, 1161번 버스를 타고 10여분 가면 ‘정의공주 묘, 연산군 묘’ 정류장이 있다. 정류장에서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언덕에 ‘연산군 묘’(방학동 산77)가 있다. 조선시대엔 경기도 양주였으나 현재 서울시 도봉구로 편입된 땅이다.

연산군은 가족 네 명과 함께 잠들어 있다. 연산군 옆엔 부인 폐비 신씨가 묻혀 있고, 그 앞엔 조선시대 3대왕 태종의 마지막 후궁인 의정궁주 조씨 묘가 자리 잡고 있다. 가장 앞쪽엔 연산군의 딸 휘순공주와 그의 남편 구문경이 안장돼 있다.

연산군은 1513년 부인 신씨의 요청으로 강화 교동도에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꼬인 그의 인생만큼이나 그의 가족사도 드라마틱하다. 중종반정 이후 유일한 핏줄인 딸 휘순공주는 시아버지이자 간신이었던 구수영에 의해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당한다. 우여곡절 끝에 휘순공주는 남편과 재회했지만 쌓인 화가 많았는지 내외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이끼 낀 연산군의 묘표에서 세월의 흔적이 선명했다. 곳곳이 파이고 금이 간 상석에서 권력의 무상함도 전해진다. 폭군으로 폐위된 연산군. 그래서 그의 무덤은 능이 아닌 묘다. 왕은 둘째 치더라도 그의 묘표엔 왕의 아들이라면 으레 있는 용과 여의주 문양도 없다. 그저 덧없는 구름 문양만 있을 뿐이다. 사후에도 경계 대상이었던 그의 곁엔 문인석만 지키고 있을 뿐, 무인석은 보이지 않았다. 팔각이 아닌 사각 장명등 옆 문인석 표정이 슬퍼 보였다.

언덕 아래엔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데 되레 언덕 위는 스산하고 을씨년스럽다. 홍기원 도봉문화원 사무국장은 “연산군 묘터는 풍수지리적으로 비가 오면 바람이 회오리치고 호곡 소리가 나는 ‘비수지풍’”이라며 “오봉의 줄기이기는 하나 그 뒤가 실개천에 의해 끊기고 묘 앞쪽으로 받쳐줄 조대산이나 안산이 없어 허망함을 안겨주는 땅”이라고 설명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릉 목록에서 연산군 묘는 광해군 묘와 함께 제외됐다.

▶외로운 연산군 수백년간 지켜준 ‘방학동 은행나무’=연산군 묘가 위치한 언덕 바로 밑에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다. ‘방학동 은행나무’다. 자그마치 수령이 540년이나 된다. 약 870년으로 추정됐으나 최근 조사 결과, 540년으로 밝혀졌다. 높이 24m, 지름 9.6m로 성인 남자 4명이 가려질 정도로 크고 웅장하다. 웬만한 나무 몸통만 한 나뭇가지를 보고 있자니 이를 ‘나뭇가지’라고 불러도 될지 망설여졌다. 세월의 무게 탓일까. 가지 곳곳에는 지지대가 받쳐져 있다.

이 나무에는 연산군과 그의 부인 신씨의 애처로운 사랑 얘기가 전해진다. 연산군은 실정을 거듭하다 1506년 폐위된 뒤 강화도로 추방됐고, 그 해 숨을 거뒀다. 역사는 그를 비난했지만 신씨에게 연산군은 하나뿐인 지아비였다. 죽어서도 자유롭지 못한 지아비에게 나무로나마 따뜻한 가림막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신씨는 중종에게 이곳으로의 이장을 간청했다고 한다. 나무는 연산군 묘 이장 과정과 휘순공주 내외, 마지막으로 신씨가 연산군 옆자리에 묻히기까지의 전 과정을 함께했다.

나라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길 때는 나무에 불이 난다는 전설도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1년 전인 1978년에 화재가 났다. 나무에 대한 주민들의 애착도 각별해 주민들은 나무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아파트단지 구조를 변경했고, 도봉구청은 나무 옆 빌라 두 동(棟)을 매입ㆍ철거해 나무만을 위한 공간을 조성해줬다.

▶절대 마르지 않는 샘 ‘원당샘’=‘방학동 은행나무’에서 연산군 묘를 바라보고 섰을 때 왼쪽 골목으로 30걸음 정도 옮기면 ‘원당샘’이 나온다. 마을 한가운데 위치한 우물로, 파평 윤씨 집성촌이었던 이 마을 사람들에게 600여년 전부터 생활용수를 공급해왔다. 수량도 풍부해 심한 가뭄에도 마른 적이 없고, 일정한 수온을 유지해 혹한에도 얼어붙은 일이 없다고 한다. 현재까지도 이 샘은 마을 주민들의 목마름을 해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연산군 묘의 제실 ‘양로재’=여기서 다시 20m쯤 가면 오른편으로 ‘연산군 묘 제실’이 나온다. 소박한 ‘ㄱ’ 모양의 제실은 매년 연산군 제의행사 때 사용된다. 연산군 어렸을 때 별명인 양로왕을 따 ‘양로재(養老齋)’라 불리기로 한다.

연산군 종외증손녀의 양자인 이안눌이 지어 1903년까지 연산군 제사를 지냈다. 2010년 개ㆍ보수됐지만 제실 일부가 민간 소유권으로 넘어가 담을 경계로 양옥집과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제실을 나와 길을 따라 걸으면 양옆으로 울긋불긋 물든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막바지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한다. 왼쪽에 펼쳐진 꽤 넓은 면적의 주말농장에선 여유로운 시골 풍취가 느껴졌다.

▶‘회산군’ 묘와 세 개의 부녀자 묘 =주말농장이 끝나는 부근엔 왼편으로 ‘회산군 이염 내외의 묘’가 자리 잡고 있다. 회산군은 성종의 5남으로, 연산군의 이복동생이다. 연산군이 모자란 기녀들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궁궐 인근 회산군의 집을 빼앗았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나온다. 기녀들의 거처를 흥청(興淸)이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흥청망청(興淸亡淸)’이란 말이 유래했다. 연산군 묘엔 없는 묘표의 용과 여의주 문양이 눈에 띈다. 연꽃을 든 동자석에서 조선 초기 불교의 영향도 찾아볼 수 있다.

회산군 묘를 지나 우이그린빌라 버스정류장 오른쪽 산책로를 한참 걷다 보면 꽤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묘 세 개가 차례대로 나온다. 연산군 종외증손녀와 혼인을 한 덕수 이씨 집안의 부녀자 묘들이다. 관리되지 않은 듯 무너진 봉분이 애처롭다. 훈민정음 창제의 숨은 공신으로, 연산군 묘 인근에 위치한 ‘정의공주 묘’와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정의공주 묘에는 신라 태종 무열왕릉비 의 2배 크기의 귀부(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대)가 세워져 있다.

황혜진 기자/hhj6386@heraldcorp.com

무엇을 먹을까 ▶명품한우 천둥소리(02-3492-6677)=이곳은 한우 전문점이다. 지상 2층 규모인 이곳은 명품 한우만을 고집하며 엄선된 재료와 정성을 다해 맛과 분위기를 살렸다. 삼겹살과 갈비 등도 준비돼 있다. 방학동 444-37.

▶최고집칼국수 방학점(02-955-7072)=상호명엔 칼국수가 들어가 있지만 해물찜도 상당히 유명하다.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양, 거기다 맛까지 갖춰 등산객이 아닌 일반인도 일부러 찾아가는 맛집이다. 모든 식자재는 그날그날 수급하며 재료가 떨어지면 더는 손님을 받지 않는다. 방학로 286.

▶따순뚱식당(02-3492-8379)=멋스러움이 묻어나는 20년 전통의 오리 전문점으로, 국내 나주산 오리, 쌀, 배추만을 고집해 더욱 풍성하게 입맛을 돋운다. 방학로2길 19.

▶금강산감자탕(02-3491-5401)=특별한 손맛을 자랑하는 감자탕 전문점이다. 일반 돼지등뼈와는 구별되는 특수 부위를 사용해 깔끔하고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입소문으로 더욱 유명한 집이다. 도봉로 669.

▶무교동낙지미락(02-954-8872)=한 번 맛봤던 손님은 다시 찾는다는 낙지요리 전문점으로 오랜 전통과 내력의 맛을 선보인다. 방학로 196. 지상 1층.

▶동해수산(02-3491-8500)=다양하고 풍부한 스키다시, 친절한 서비스와 맛을 자랑하는 활어회요리 전문점이다. 차별화된 맛과 손맛을 저렴한 가격으로 선보인다. 각종 회식, 접대, 단체모임 등에 적합한 전문점이다.

황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