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사초(史草) 실종’ 사건으로 고초를 겪던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대선 불공정’을 직접 외치며 정국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새누리당의 ‘대선불복’ 역공을 부를 게 뻔한 ‘박근혜 대통령 수혜론’까지 직접 언급했다.

문 의원의 발언으로 특유의 ‘모두 걸기(all-in)’ 정치스타일은 더욱 뚜렸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하지 않았다’에 정치 생명을 내걸었고, 2007년 남북정상대화록을 국가기록원에 이관한 당사자라며 역시 온 몸을 던졌다. 그런데 아직 얻은 것은 없다. NLL은 여전히 ‘논란’이고, 남북정상대화록은 실종 상태다.

지난 대선에서 그는 분명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고, 그의 언행은 곧 민주당 자체였다. 하지만, 현재 그는 127명의 민주당 의원 중 한 사람일 뿐이다. 민주당 의원 모두는 지난 대선과정에 국정원의 개입 등 문제가 많았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문 의원이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하고 나선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앞선 두 차례의 모두 걸기 때문에 민주당이 짊어져야했던 부담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무려 49%를 득표했던 문 의원이다. 문 의원이 뭔가를 걸 때는 민주당도 함께 끌려다닐 수 밖에 없다. 당장 사초실종만 해도 민주당이 입은 타격은 적지 않다. 문 의원이 넘겼다고 호언한 남북정상대화록이, 국가기록원으로 넘어가지 않은 것으로 검찰 수사결과가 나오면서 민주당 입장이 난처하게 됐다. 이번에도 민주당은 ‘대선불복이냐’라는 새누리당의 반격에 진땀을 빼야할 처지다.

문 의원도 민주당의 이런 처지를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이번 문 의원의 ‘모두 걸기’는 앞선 두 차례와 분명 다른 점이 있다. NLL논란에도, 사초실종 논란 현 정부의 정통성과는 어느정도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 대선불공정 논란에는 박근혜정부의 정통성이 통째로 걸려있다. 앞선 두 차례의 ‘모두 걸기’가 방패였다면, 이번에는 창이다. 정치생명을 걸만한 승부다. 대화록 실종과 대선패배로 위기에 몰린 친노세력의 규합과 부활을 노린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계에 발을 내딜때만 해도 부정확한 발음 때문에 어수룩하게까지 보였던 문 의원이다. 하지만 총선과 대선, NLL논란과 사초실종 사건을 겪으면서 이제 그에게서도 노련한 정치 고수(高手)의 풍모가 느껴진다. 다만 자꾸 ‘모두 걸기’를 하는 그에게서 옛 노무현 대통령의 체취가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어쨓든 주사위는 던져졌다.

홍길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