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을 달고 살았다. 조정석과 아이유의 오작교 역할을 자처하며 “확 고백해버리라”고 칭얼거렸다. 사방팔방 휘저으며 사고도 쳤다. 그 때마다 ‘대표님’을 부르며 표정으로 몸으로 캐릭터에 녹아들었다. 186cm, 껑충한 키ㆍ앳된 얼굴에 잘 까부는 시끄러운 소년을 상상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차분하고 담담하다. 질문 하나를 던지면 가만히 곱씹었다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모습이 도리어 철이 꽉 든 어른 같았다. 올 한 해 브라운관을 종횡무진하는 이지훈이다.
30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꿰찬 반항아(‘학교2013’)였고, 오지랖 넓은 시끄러운 매니저(‘최고다 이순신’)였다. ‘배드민턴 신동(’우리동네 예체능‘)이었고, 불편한 의사소통에도 기죽지 않는 애교쟁이 막내(’우리가 간다‘)였다. 오는 11월엔 SBS ’패션왕‘을 통해 의상 디자이너에도 도전한다. 주말극과 더불어 예능 프로그램 출연 덕에 인지도는 껑충 뛰었다. “’라디오스타‘ 보고 급호감 됐어요.”, “배드민턴 잘 치시던데요?” 알아보는 사람들도 다양해졌다. 신인연기자가 배우로 확고한 입지를 다지기도 전에 연이은 예능 출연으로 부각되는 것에 고민도 많았지만, 연기와는 다른 세계를 경험하며 사심도 꽉꽉 채우고 있다.
“운동하고 싶어 ‘예체능’에 도전했고, 해외여행 한 번도 못해봐서 ‘우리가 간다’에 흔쾌히 출연했어요. 2주에 한 번씩 비행기를 타거든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어릴 땐 막내삼촌 옷만 물려입은게 한이었어요. 패션은 잘 모르는데 옷 욕심은 많아서 ‘패션왕’에 도전했어요. 디자인하는 옷을 다 주는 줄 알았어요.”
사실 연예인이 되고 싶어 들어온 길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8년간 공만 차던 시절이 있었다. “축구가 내 삶의 전부”였던 때였지만, 부모님의 반대와 넉넉치 못한 집안환경으로 이른 나이에 상실감을 마주 했다. 그게 전부였던 소년은 혼자 남았다. ’간절함‘이 부족해서 꿈을 놓쳤다는 생각도 했다. 방황이 시작됐다.
“꿈이 없는 아이였어요. 그 이후로 아무런 흥미도, 생각도 없이 사는 삶이었어요. 학교라는 공간은 무료하고 제게 꿈을 주지 못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찾지 않으려 밀어낼 수도 있었겠지만요.”
운동만 했던 이지훈은 결국 체대에 진학했다. 당시에도 스스로는 “할 줄 아는게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에 군대에 갔다. 스물한 살, 발렌타이데이가 입대날이었다. 꿈은 다시 찾아왔다. 우연히 후임으로 들어온 뮤지컬 배우가 가져온 책을 읽은 뒤 새로운 문 하나가 그의 앞에 열렸다. 세익스피어, 톨스토이, 안톤 체호프였다.
“어색하고 신기했어요. 책이라는 걸 읽어본 적이 없는데 자꾸 눈이 가고 마음이 움직이더라고요. 그 때 이후로 일기도 썼어요. 제 감정들을 하나씩 적어가기 시작했어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때다. 언젠가 다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번엔 놓치지 말아야 겠다”는 마음도 컸다. 연기를 하기 위해 신문배달은 물론 “너무 힘들어 2주만에 그만뒀다”는 택배를 비롯해 카페, 옷가게, 속옷가게 알바를 뛰었다. “감정을 표현하는 일인데 굳이 배워야 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역시 “나보다 나은 사람에게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연기공부 이후 처음 만난 작품은 공교롭게도 ’학교2013‘. 같은반 친구들을 괴롭히는 문제아였다.
“그냥 저였어요. 제게 대사가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9회부터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갑작스러워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고교시절에 제가 느꼈던 속마음이 나오더라고요.”
그래도 아쉬움은 많다. 아직 시작이기에 자신 안에 쌓인 감정들을 소극적으로 표현했다는 후회도 생겼다. 두 편의 드라마를 끝낸 지금 종종 ‘예능대세'로도 불리지만 이지훈은 “배우라는 수식어 하나만 남은 배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연기를 시작한 이후 성격이 예민해져 더 세밀한 감정과 마주하는 요즘엔 “빨리 서른이 되길 바란다”고 한다. “연기는 나이에 비례”하기에 그 때가 되면 더 자연스러운 연기를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다. 지금은 그 나이도 머지 않았다. 10월 29일 그는 스물여섯 번째 생일을 맞았다. 늦었지만 “지훈씨, 생일 축하해요.”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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