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상범 기자]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 작품 ‘레미제라블’은 우리에게 장발장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작품입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장발장은 굶고 있던 가족들을 위해 빵 하나를 훔쳤다가 5년간의 감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단지 빵 한조각이지만 범죄는 범죄. 장발장은 이후 법의 냉엄한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야기 됩니다. 경찰서에는 이런 안타까운 장발장들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사정은 충분히 딱하지만 범죄를 저지른 것은 틀림없기에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현대의 장발장들 말이죠.

지난해에는 폐지를 주워 근근이 살아가는 70대 할머니가 9만 원 상당의 떡을 들고가 이웃들과 나눠 먹었다가 한 달 생활비에 해당하는 20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할 처지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아기에게 먹일 분유를 훔치다가 절도혐의로 입건되는 엄마의 사연도 종종 언론에 등장하죠.

이처럼 안타까운 사연을 접할때마다 “그 정도 경미한 범죄는 선처를 해주면 안되나?”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건을 처리하는 경찰의 입장에서는 수백억을 훔치든, 만 원 짜리 한 장을 훔치든 법의 기준에서는 똑같은 범죄입니다. 물론 경중의 차이는 있겠죠.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경찰들도 이런 안타까운 사연을 보면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마음같아서는 자신이 훔친 돈을 대신 내주고 싶지만 법을 집행하는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이런 답답한 경찰과 시민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는 제도가 현재 경찰에서 시행중입니다.

법의 잣대로만 보면 범죄지만 순간의 작은 실수를 저지른 피의자에게 기회를 줘 새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현대판 장발장 구하기가 시범 운영중이죠.

원래 경찰서장에게는 즉결심판이라는 권한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범죄의 경우 경찰조사를 거쳐, 검찰로 넘어가 기소가 되고 이후 법원에서 판결이 이뤄지는 절차를 거치는데요. 경미한 범죄의 경우 검찰 기소단계를 생략하고 경찰서장 재량으로 처분을 내리는 것이죠. 하지만 온정주의와 자의성 논란 때문에 일선 경찰에서는 제대로 적용하기가 어려운 제도이기도 합니다.

경찰은 바로 이 즉결심판권을 강화해 작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무조건 범죄자의 낙인이 찍히는 것을 줄이고 있습니다. 현재 서울 송파경찰서를 비롯해 전국 6개 경찰서에서 시범운영되고 있는 이 제도의 명칭은 경미범죄심사위원회입니다.

기존 형사입건으로 처리되던 사건 중 피해정도가 경미한 사건을 즉결심판으로 회부해 피의자가 범죄자로 전락하지 않고 반성을 통해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이 제도는 송파서에서 지난 5월부터 운영돼 현재까지 총 5차례의 회의를 거쳐 26명중 21명에 대해 새로운 기회를 부여했습니다.

이 제도를 통해 새 기회를 받은 이들의 사연도 다양합니다. 지난해 9월 절도혐의로 서울 송파경찰서에 입건된 취업준비생인 A(28ㆍ여) 씨. A 씨가 훔친 것은 8000원짜리 화장품 하나였습니다. 취업준비 등의 스트레스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물건을 훔친 것이죠.

가게 주인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힌 A 씨는 조사 과정에서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쳤고, 주인 역시 그 모습에 더 이상 A 씨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입건된 상황에서 꼼짝없이 전과가 남아 취업에도 불이익이 있을 것으로 걱정하던 A 씨에게 경미범죄심사위원회에서 A 씨의 사정과 범죄 전력이 없는 점이 고려돼 선고유예 처분을 내렸고 A 씨는 전과처리없이 새로운 기회를 받았습니다.

한국의 법을 잘 몰라 입건된 외국인의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천에서 허가받지 않은 사람이 물고기를 잡으면 처벌을 받는데, 이를 알지못했던 외국인이 냇가에서 몇 마리의 물고기를 잡았다가 입건된 것이죠.

이 경우도 문화적 상대성을 고려해 훈방조치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무조건 모든 범죄를 형사처벌 대상으로 보지않고, 각각의 사정과 처지를 고려해 기회를 주는 이 제도의 생명은 공정성과 투명성입니다.

아마도 경찰이 자기들 마음대로 처벌 대상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위원회의 구성은 경찰서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생활안전과장, 수사과장, 형사과장, 청문감사관 등 경찰관계자에 변호사, 교수, 주부등으로 구성된 12명의 시민위원 중 매 회 2명이 참여해 경찰뿐아니라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습니다.

또 단순한 선처가 아닌, 필요한 사람에게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위원회가 가장 중점을 두는 것도 냉정함과 공정성입니다.

각 과에서 대상자를 선정할 때 범죄의 경미성 뿐만아니라 피의자의 가정환경, 선도여부 등을 꼼꼼히 따지는 것이죠.

그리고 회의는 사건 담당 경찰관과 함께 심사 대상자가 참석해 본인의 의견을 소명할 수 있는 기회를 줘 사건에 대한 몰입, 이해도를 높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시민들은 한번의 실수로 지울 수 없는 전과를 기록하지 않게 돼 안도하는 반응입니다. 경찰 측도 기계적 법적용이 아닌, 정황과 처지를 고려해 범죄자가 아닌 사회의 구성원으로 노력할수 있게 도움을 주는 점에 보람차다는 반응입니다.

송파서 관계자는 “엄정한 법집행이 경찰의 기본임무이긴 하지만 스스로의 잘못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줘 새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야말로 ‘법’이 아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위원회를 거쳐간 사람들이 새 삶을 살며 자신이 받은 도움을 남에게 베풀 수 있다면 더이상 바랄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경찰은 현재 송파서를 비롯해 전국 6개 경찰서에서 시범운영중인 위원회를 오는 10월까지 운영하고 효과가 있다고 판단되면 전국으로 확대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이 제도가 활성화 돼 전국의 안타까운 장발장들이 새로운 기회를 받을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