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기승이다. 올해는 반쪽 장마로 남쪽은 폭염이, 북쪽은 폭우가 여름 날씨를 양분했다. 다행히 서울은 잦은 비로 심한 더위를 피할 수 있어서 하늘에 감사하고 있다. 이제 지루했던 장마가 끝나고 여름 더위가 본격화되리라는 예보다. 이제부터 9월 중순까지 더위가 맹위를 떨칠 것이라니 걱정이다.

폭염이건 폭우건 바캉스의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전국 유명 해수욕장에 몰려든 숱한 인파, 그곳으로 가는 혼잡한 도로,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 바가지요금 시비, 그리고 꼭 등장하는 휴가비 마련을 위한 범죄 등이 연일 보도되는 것을 보면 휴가철은 휴가철인 모양이다.

바캉스는 1936년 프랑스에서 노동자 복지 향상을 위한 타협안 중 하나로 시작되었다. 주 5일, 40시간 근무, 연간 2주의 유급휴가 등을 의무화한 소위 ‘마티농 합의’가 시발점인 셈이다. 그 후 휴가기간은 계속 늘어 80년대 미테랑 대통령은 5주로 휴가기간을 늘려놓았다. 프랑스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1년에 140여일을 휴가로 쓸 수 있다.

미국의 경우는 70년대 초 공휴일을 재조정하는 방법으로 근로자들이 쉴 수 있는 날짜를 늘렸다. 시차는 있지만 일본이나 중국도 공휴일이 주말과 겹치거나 꼭 지켜야 할 날짜가 아닌 기념일을 월요일로 정하는 방법으로 연휴를 만들었다. 이런 결정으로 소위 ‘황금 연휴’가 생겼고 바캉스를 분산시키는 부산물을 얻기도 했다.

우리의 경우 70년대 중반부터 바캉스란 이름으로 여름휴가가 본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경제발전으로 삶의 질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고속도로의 확충, 자동차의 대중화, 그리고 휴가지 개발과 편리한 숙박시설 건설이 이뤄지면서 ‘친척집 원두막에서의 피서’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엔 외국으로 가는 바캉스도 한몫을 하고 있다.

프랑스, 독일, 덴마크 등 유럽의 여러 나라 사람들의 바캉스도 여름에 집중된다. 미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다만 이들의 휴가기간은 우리보다 훨씬 긴 30일이나 된다. 그들은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1년을 준비한다. 단순히 먹고 마시고 떠들고 춤추는 찰나적인 흥취만을 겨냥하는 것은 아니다. 가고 싶었던 곳, 궁금하던 곳, 쉴 수 있는 곳을 찾는다. 별난 음식도 먹고, 읽고 싶었던 책도 펼치고, 풍광도 즐기면서 가족끼리 한적한 일상을 지내다가 돌아온다. 일상에서 벗어나 재충전한 후 남은 해를 잘 마무리하자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더 즐겁게 일을 하기 위해 쉬라(Otiare quo melius labores)’란 말을 공연히 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우리의 경우 바캉스에 침전되어 있는 의미보다 겉모습만 받아들였기 때문에 찰나적이고 일회적이며 소모적인 방법으로 ‘바캉스 임무’를 치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 선조들은 피서를 위해 유두(流頭: 맑은 시냇물에 머리감기), 탁족(濯足: 계곡물에 발 담그기), 거풍(擧風: 대청마루에서 시원한 바람 쐬기) 등으로 조용히 여름을 보냈다. 습정투한(習靜偸閒: 고요함을 익히고 한가로움을 찾아라)이 피서의 근간인 셈이다. 서양의 제도를 우리 것으로 속살을 채워 알차고 품격 있는 휴가문화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공상을 더운 여름 한낮에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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