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슬기 기자] 안양에서 민간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일하고 있는 안수영(28·여·가명) 씨는 지난해 이맘때를 떠올리면 머리가 지끈 거린다. ‘평가인증제도’ 때문이다. 안 씨가 근무하는 어린이집은 지난해 3월부터 인증준비를 시작해 약 6개월 뒤인 10월에 평가인증을 받았다. 안 씨는 “정상퇴근은 커녕 한달 정도는 아예 어린이집에서 밤을 새며 인증을 준비해야 했다” 며 고생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영·유아에게 질 높은 보육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지난 2002년부터 시작된 평가인증제도가 보육교사들에게 과도한 업무를 지우면서 오히려 보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어린이집 환경미화부터 구비서류 준비까지 모든 과정을 일선 보육교사가 책임져야 하는 가운데 아이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것. 안 씨는 “평가인증을 준비할 당시 매일 늦은 밤까지 초과근무 때문에 정상적인 수업을 진행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다가오는 8월 평가인증을 앞둔 10년차 보육교사 A 씨의 사정도 비슷하다. 보육일지, 아동 관찰기록, 안전교육일지, 보육과정평가서, 보육실 환경점검일지 등 관련 서류를 준비하다 보면 새벽 2시를 훌쩍 넘기기 일쑤다. 결국 A 씨는 이런 상황을 참다못해 한 인터넷 게시판에 고충을 토로하는 글을 올렸다.
A 씨는 “아이들하고 즐겁게 지내야할 수업시간인데 ‘일지에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적으면 좋을까’ 하는 생각만 든다” 며 “보육교사들이 본업인 아이돌보기를 포기해야 할 상황” 이라고 심정을 토로했다.
보육교사들의 이런 사정이 정해지자 아이들을 맡긴 부모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맞벌이를 하며 아이를 키우는 이진실(31) 씨는 “평가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여러 서류가 필요한데, 그 서류를 선생님들이 준비하면서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는 사태도 종종 발생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고 걱정했다.
또 다른 학부모 B 씨는 “아무리 좋은 교사라도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짜증이 나게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 놓은 어린이집 교사들은 오죽하겠냐” 며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금옥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민간분과 과장은 “평가인증을 준비하다 보면 교사들은 아이들을 관리하는 것보다 ‘일지 한 줄을 어떻게 쓸까’ 고민을 하게 되고 또 잔무에 시달리다가 다음날 보육 준비를 소홀히 하게 될 수 있다” 며 “나아가 평가인증 때문에 교사들의 마음이 조급한 상태에서 의도치 않은 학대나 방임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고 밝혔다.
평가인증제도를 주관하는 한국보육진흥원 측은 그러나 “현재 보육교사들이 고충을 토로하는 부분은 민간어린이집들 사이에 잘못 퍼진 정보 때문” 이라고 일축했다. 평가인증에 필요한 서류는 영유아보육법상에 적시된 필수서류로 평가인증을 받든 받지 않든 모든 어린이집에서 기본으로 작성, 보관해야 하는 서류라는 것.
조용남 한국보육진흥원 평가인증국장은 “보육일지 등 관련 서류 작성에 대해 잘못된 정보가 퍼진 것 같다” 며 “일지에는 아이에게 발생한 특이사항만 적으면 되는데도 보육교사들이 더 잘하고자 하는 마음에 불필요한 내용까지 적는 것은 아닐까 하는 판단”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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