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 ‘죽음의 서를 연애편지처럼 접고 접어서 하늘에 종이 비행기, 바람처럼 띄워놓고 사라졌다. 한강은 오늘도 충혈된 눈으로 싸이렌이 울리고 순라 말들의 갈기가 그들을 찾고 있다.’

서울 영등포 경찰서 112 상황 실장 김상경(59) 경감이 펴낼 시집 ‘백림(白林ㆍ가제)’에는 이 같은 내용의 ‘실종신고’라는 제목의 시가 담길 예정이다.

김 경감은 이 시에서 한 여인의 사체를 찾으로 간 현장의 애타는 모습과 못다이룬 사랑을 한 장의 유서에 남겨놓고 죽어간 여인의 비원을 담았다. 시에서 순라 말은 순찰차를 의미한다.

시집 ‘백림’에는 경찰로 일하며 그가 느낀 소회 뿐 아니라, 그리움, 유토피아를 그려낸 시들이 실릴 예정이다.

김 경감은 지난 2000년 초 등단한 늦깎이 시인이다. 학창시절, 시인 신석정 선생의 문예반 막내 제자로 시를 배웠던 그는 시인이 되려 했다.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네명의 동생과 어머니가 눈에 아른 거려 마냥 꿈만 쫓을 순 없었다.

1980년에 경찰이 돼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시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꼬깃꼬깃 접은 이면지를 가지고 다니며 사건 현장에서 떠오르는 시상을 적었고 즉시 시로 풀어냈다.

그렇게 써 내려간 시가 500여편. 50대 늦은 나이로 등단한 뒤, 퇴직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자신의 이름으로 시집을 낸 것이다.

직업이 경찰이다 보니 그의 시 중에는 경찰의 눈으로 그려낸 것들이 많다.

‘…112 때르릉, 애인을 찾아달라는 꼭지 포도 말린 씨된 젖은 가슴…(중략)…독수리 제복이 모두 애인 같다는….’

‘실종신고’가 자살한 20대 여인의 비원을 경찰의 눈으로 그려냈다면, 제목의 ’112 때르릉 때르릉’의 시는 112 신고를 받는 경찰의 고충을 위트있게 그려냈다. 이 시는 밤 12시만 되면, “자신의 남자친구를 찾아달라”며 112신고를 하는 여인의 실화를 담았다.

‘경찰이 짬짬히 쓴 시’라고 하기엔 그의 경력은 화려하다. 김 경감은 한국 문인 협회, 한국 현대 시인 협회, 한국 좋은시 공연 문학회 회원 등 으로 활동 중이며 2011년 10회 양천 문학상, 2012년 전국 문인 대표자 대회 즉흥시 장원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겨울의 기다림 잔설의 길을 밟고 갈빛 새로워지는 산에 오르자 두근거리는 골짜기 가슴 사이로…(중략)… 누런 세월 먹피로 맺힌 응혈들 콸콸 쏟아내 버리고…(중략)…우리의 화원에 씨 뿌리고 물을 자분자분 주자.’

이는 ‘봄이 오면’ 중의 일부로 시집에 담길 시는 이와 같이 신석정 시인의 영향을 받은 서정시가 대부분이 될 예정이다.

시집을 낸 경찰로 화제가 되고 있는 김 경감은 “경찰 일은 내 인생에 중요한 한 부분이며, 나는 시인이기도 하고 경찰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업무상 건조할 수밖에 없는 경찰이 그려낸 서정의 세상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