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다롄을 믿고 중국에 동반진출한 국내 협력업체들은 생사기로에 서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만 바라고 있는 이들은 이달 말 중국을 방문하는 박 대통령에게 마지막 희망을 품고 있다.
중국 오천년 처세술의 정수인 ‘병법 36계’ 중 제5계가 ‘진화타겁’이다. 상대편의 집에 불이 나서 혼란스러울 때 그 집의 재물을 손에 넣는다는 뜻이다.
1644년 베이징을 점령한 이자성(李自成)은 산해관(山海關)을 지키고 있던 명나라 장군 오삼계(吳三桂)를 치기 위해 10만 대군을 이동시킨다. 당초 오삼계는 이자성에게 투항하기로 마음을 잡았으나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받는다. 이자성의 군대가 아버지를 잡아갔고, 애첩 진원원(陳圓圓)은 이자성의 부하 유종민이 데려갔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분노와 질투로 달아오른 오삼계는 청나라의 도움을 받아 이자성에 대항하기로 결심하고 청의 섭정왕 도르곤에게 지원 서신을 보낸다. 그러나 도르곤은 차분하면서도 가혹하게 오삼계를 압박했다. “항복하겠다면 군대를 보내주고 나중에 제후 지위도 주겠다”는 답변이었다.
명나라 장군으로서 오랑캐에게 ‘항복’하는 치욕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오삼계는 청의 도움 없이 이자성의 대군과 혈전을 벌인다. 산해관이 이자성에게 떨어지기 직전, 오삼계는 도르곤의 항복요구를 수락하게 된다. 이자성과 오삼계의 싸움을 기화로 해서 결국 만주족은 ‘중원의 주인’이 된 것이다.
‘진화타겁’은 쉽게 말해 ‘남의 위기는 나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상대의 위기를 틈타서 이익을 취하는 행위가 지금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의 STX다롄조선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ㆍ중 투자교류의 상징물인 STX다롄조선이 석 달째 조업중단 상태다. 협력업체에 대한 납품대금 지급도 전면중단되면서 31개 한국 협력사는 피가 마른다.
이 같은 상황은 적절한 구조조정을 못하고 방만한 경영을 한 STX 임직원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중국 정부 및 금융권의 외자기업에 대한 차별’에서 찾을 수 있다.
STX다롄조선은 대출금을 1년 단위로 상환했다가 재대출받으라는 궁상은행 등 중국 금융권의 요구에 따라 지난해 말 7억달러를 일시에 갚았다. 그런데 중국 금융권은 재대출을 전액 거부했다.
STX다롄조선은 저가 수주와 주문취소 물량을 제외해도 43척의 수주잔량이 있지만 한푼도 대출이 되지 않으면서 운영자금 부족으로 결국 조업이 중단된 것이다.
반대로 중국 측은 느긋하다. STX다롄의 절박한 사정을 보면 헐값에 사들일 수 있고 기술도 넘겨받을 수 있다. 중국의 의도적인 ‘STX 죽이기’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STX다롄 채권사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농구감독 출신의 최희암 고려용접봉 중국법인 대표는 기자와 만나 “방중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 다롄을 한번 찾아주시고 한ㆍ중 정상회담에서도 이 문제를 언급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한다”고 다급한 심정을 토로했다.
STX다롄을 믿고 중국에 동반진출한 국내 협력업체들은 생사기로에 서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만 간절히 바라고 있는 이들은 이달 말 중국을 방문하는 박 대통령에게 마지막 희망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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