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주연의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감독 장철수)가 지난 5일 개봉 이후 각종 신기록을 쏟아내며 폭발적인 흥행행진을 하고 있다. 이 영화는 개봉 나흘째인 지난 8일 오전 300만명을 돌파했다. 역대 한국영화 개봉일 최다 관객, 역대 개봉작 일일 최다 관객에 이어 역대 최단시간 100만명(36시간), 200만명(72시간) 돌파 등의 신기록을 낳으며 개봉 닷새만인 9일까지 349만1508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을 동원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어린 시절부터 북한에서 ‘살인 기계’로 길러지고, 의학ㆍ화학ㆍ공학 등 최고 엘리트 교육을 받은 특수요원이 대남공작을 위해 남한의 한 달동네에 바보청년으로 위장해 침투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각종 광고와 CF 모델을 꿰차며 최고의 꽃미남 청춘스타로 떠오른 김수현을 주연으로 한 이 영화는 ‘간첩’이나 ‘분단’을 과거처럼 ‘역사적 실존’이나 ‘이념대결의 현실’이 아닌 ‘장르적인 판타지’로 소비하는 젊은 세대와 대중문화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미 올해 초엔 베를린을 무대로 남북한의 스파이들이 대결하는 첩보 액션 스릴러인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이 개봉해 흥행에 성공했고, 하반기엔 빅뱅의 멤버 탑(본명 최승현)이 고교생으로 위장한 ‘소년간첩’으로 등장하는 ‘동창생’이 개봉할 예정이다. 김수현은 “지난해부터 간첩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시나리오를 몇 편 제안 받았다”고 할 정도로 최근 간첩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때아닌 특수를 맞고 있다.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63주년이며, 오는 7월 27일이면 정전협정이 이루어진 지 꼭 60년째를 맞게 된다. 한국영화는 휴전과 분단 이후 부터 한국전쟁과 그로 인한 역사의 상흔을 스크린에 담아왔다. 한국전쟁과 분단의 역사는 우리 대중문화에서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의 보고가 돼 왔으며, 분단영화는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영화의 한 하위 장르가 돼 왔다.
1960년대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부터 1990년대말 ‘쉬리’와 2000년대의 ‘공동경비구역JSA’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투동막골’을 거쳐 최근의 ‘의형제’ ‘베를린’ ‘은밀하게 위대하게’까지 분단과 간첩을 소재로 한 작품은 대규모 흥행의 맥을 이어갔다. 이렇듯 정전 이후 60년간 끊임없이 만들어진 분단영화는 남북관계와 시대인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징표가 돼 왔다.
한국영화는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반공을 강조하는 국책에 따라 남북간 대결의식을 강조하고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며 북한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작품이 주류를 이루었다. 북한과 북한 사람은 증오와 혐오, 공포, 정복의 대상이었다. 그러다가 사회의 민주화와 1990년대말 대북 유화 정책(햇볕정책) 등에 힘입어 점차 북한은 ‘공존의 파트너’이자 ‘연민의 상대’가 됐다. 북한 사람들도 ‘괴물’이자 ‘악마’, ‘악당’에서 점차 인간적인 면모가 강조되는 경향이 우세해졌다.
특히 간첩은 우리 남한의 체제의 파괴를 획책하는 악당이나 악마의 존재로 묘사되기 일쑤였으나 200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의 경제난과 북한 권력의 변화에 따라 탈북자로 대체되거나 ‘생계형’으로 묘사되는 사례가 많아졌다. 그 중에서도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사회의 주역이 되고 한국영화의 생산과 소비 전면에 나섬으로써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감각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으로 꼽힌다. 간첩과 분단이 액션과 스릴러의 소재로서 뿐 아니라 ‘꽃미남 청춘물’과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물’이라는 하위 장르에서 소비되는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정전 60년, 분단영화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기록하는 한국 영화 속 역사의 변화를 보여준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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