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3회> 총칼 없는 전쟁 (33)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5개국 관통 랠리대회는 상하이 남서쪽, 항저우 만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도시 ‘사오싱’에서 출발하도록 되어 있었다. 사오싱은 한적한 시골 도시이다. 1년에 2모작을 하는 평야지대로서 들판을 거니는 수소의 불알이 언제나 축 늘어져 있는 더운 지방이다.
그곳에서 출발한 랠리 카들은 ‘항저우’를 지나 ‘우한’에 이르기까지 습한 평야지대를 달리게 될 것이다. 평야지대를 달리는 동안 육신은 편할지 몰라도 드라이버들의 정신은 오히려 피로해지게 된다.
시야가 닿는 곳까지 빤히 보이는 상태, 이른바 지평선이 보이는 상태에서 상대방 머신들과 일렬로 달리다 보면 자칫 경쟁심이 발동하게 되는데, 혈기왕성한 젊은 드라이버들에겐 오히려 이게 쥐약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아직 체력도 충분하고 집중도도 높은 상황인데, 그런 조건이 오히려 무료함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에 하나 그 시점에 누군가가 엔진 출력을 높여 앞으로 차고 나간다면 드라이버들은 때를 만났다는 듯이 일시에 불을 뿜듯 내달리게 될 것이 뻔했다. 그러면 랠리대회는 처음부터 목숨 걸고 달리는 파이팅으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그런 평야구간은 겨우 10% 정도 구간에 불과했다. 사실 앞으로 이어질 90% 구간이야말로 파이팅 구간이었던 것이다.
“권 전무님 불편하시겠네. 차라리 내 어깨에 기대라고요.”
유호성이 질투를 느낀 것일까? 권도일의 어깨에 기대어 곤히 잠든 현성애의 머리를 그는 강제로 외로 틀어서 제 어깨에 기대도록 했다.
“괜찮아요. 그냥 내버려 두세요.”
“글쎄, 권 전무님 불편하시게 하지 말라고요.”
현성애가 다시 권도일의 어깨 위에 머리를 옮겨 기대자 유호성은 다시 그녀의 머리를 외로 틀어 제 어깨 위로 되돌려 놓았다.
“권 전무님 어깨가 더 편하다고요.”
현성애가 이렇게 짜증을 냈다. 이를테면 그녀는 유호성의 오장육부에 똬리 틀고 있는 질투와 경쟁심에 불을 붙인 셈이었다. 질투심에 불이 붙었으니… 보나마나 유호성은 사오싱에서 출발함과 동시에 권도일을 상대로 파이팅을 벌일 것이 분명했다.
“염병!”
유호성은 제풀에 투덜대다가 마침 스튜어디스가 전해주는 와인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열 받았다는 뜻이었다.
랠리 카들은 ‘우한’을 지나 ‘시안’에 다다르면서부터 서서히 산악지형으로 돌입하게 될 것이다. 그로부터 1,000 킬로미터 구간은 그야말로 천 길 낭떠러지 위를 달리는 곡예의 랠리구간이 이어지게 된다. 어쩌면 코피를 흘리거나 잇몸 사이로 피를 쏟아낼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고통을 이겨낸 후에 ‘란저우’에 이르게 되면 서서히 사막이 나타나게 된다. ‘닝샤후이족 자치구’를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인 모래구덩이 속을 헤치며 달릴 것이고, 아마도 그 모래구덩이 속에 서너 명은 족히 파묻혀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식으로 고비사막을 통과하면 이번엔 몽고의 ‘툴룬산맥’을 넘어야만 하는데…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동토를 수삼일 내달려야 겨우 두만강을 건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북한 땅으로 들어서고 개마고원을 달릴 때쯤이면… 유호성의 목숨 줄도 끊어지게 된다는 것이 권도일의 생각이었다.
“호성 씨, 잔일에 신경 쓰지 말고 편히 잠이나 자 두세요. 장차 1만 킬로미터나 달려야 하는데 심신을 편하게 해둬야지요.”
권도일이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1만 킬로미터에 이르기 전에 목숨 줄이 끊어지겠지만… 그 전까지 만이라도 편히 지내라는 배려였다.
생각해보니 1만 킬로미터란…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르는 거리의 20배를 달려야 하는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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