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란 설명이 없었다면 영상 속 학생이 학교폭력 가해자란 사실을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피해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터뷰에 응하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홀로 카메라 앞에 섰을 땐 그저 그 또래 평범한 학생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한 곳에 모이자 분위기는 달라졌다. 일면식도 없었던 이들은 본능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별했다. ‘담배셔틀’,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처럼 피해 학생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포켓몬 놀이’ 등 이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 오가는 말들은 홀로 카메라 앞에 섰을 때와는 달리 적나라했다. 갈등은 이들이 한 곳에 모였을 때 비로소 불거졌다. 아들의 자살 전까지 아들이 학교에서 겪은 괴로움을 집에선 인식하지 못했다던 한 어머니의 절절한 고백이 조금이나마 가슴에 와 닿던 순간이었다.
SBS가 오는 13일부터 3주 동안 신년특집 3부작 다큐멘터리 ‘학교의 눈물’을 방송한다. ‘학교의 눈물’은 학교 폭력의 실태를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들여다보며 학교 폭력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요인을 분석하고, 학교 폭력 문제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해외 사례를 통해 해법을 찾아보기 위한 취지로 제작됐다. 배우 류덕환이 내레이션을 맡는다. 방송을 앞두고 SBS는 10일 오후 2시 목동사옥에서 ‘학교의 눈물’ 언론시사회를 가지고 1ㆍ2부 방송분을 20분으로 요약한 영상을 공개했다.
13일에 방송되는 1부 ‘일진과 빵셔틀’은 소년법원에서 만난 학교폭력의 맨 얼굴을 공개한다. 법원은 학교 폭력 사건이 학교 담장을 넘어 사회로 나오는 길목이다. ‘짱’이 돼 폭력을 행사한 학생, 돈을 뺏은 남고생,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친구를 왕따 시킨 여중생 등 비행 청소년부터 모범생 취급을 받는 반장, 우등생, 선도부까지 다양한 가해자를 통해 학교 폭력의 모습이 드러난다. 피해자들은 우울증, 대인기피, 학업중단 등의 고통의 악순환에 갇혀 절망한다. 가해자들 중 일부는 반성 없이 사회로 복귀하고, 일부는 반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범죄자란 사회적 낙인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한재신 PD는 “어른들의 시각이 아니라, 아이들의 입을 통해 직접 학교 폭력의 실태를 듣고 싶었다”며 “모든 감정을 배제하고 아이들이 학교 폭력에서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담을 수 없을까 고민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20일에 방송되는 2부 ‘소나기 학교’는 본격적인 학교 폭력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교육과학기술부,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등 정부기관과 청소년 관련 전문가들은 지난해 10월 충북 단양에 학교 폭력 회복 프로젝트 ‘소나기 학교’를 개교했다. 카메라 앞에서 자신들의 학교폭력 가해ㆍ피해 경험을 고백한 14명의 청소년들. 이들 중엔 ‘학교짱’도 있고, ‘왕따’도 있다. 이들은 10일간 합숙하며 학교 폭력을 극복하기 위해 첫걸음을 내딛는다. 합숙기간 동안 이들은 적나라한 언어로 학교 폭력의 실상과 경험을 증언한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공감할 수 있는지, 공감할 수 있다면 한걸음 더 나아가 둘 사이의 진정한 화해는 가능한 지, ‘소나기 학교’는 이들을 위해 어른과 사회가 무엇을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하는지 화두를 던진다.
27일에 방송되는 3부 ‘질풍노도를 넘어’는 학교 폭력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학교와 함께 찾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평택대학교 차명호 교수팀은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뿐만 아니라 선생님들도 함께 참여하는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을 한 학기 동안 실시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진단한다. 또한 제작진은 오래전부터 학교 폭력 문제로 고민 중인 미국의 상황을 취재해 무엇이 가장 큰 걸림돌인지 살펴보고, 또 OECD국가 중 학교 폭력 피해 발생 빈도가 가장 낮은 스웨덴을 방문해 그 비결이 무엇인지 추적한다.
한 PD는 “캐나다의 연구 자료에 따르면 사회의 빈부격차가 클수록 학교폭력의 발생 빈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사회가 발전하면서 계층화가 심해질수록 학교 공간에서 일어나는 폭력이 드러난다”고 분석했다.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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